2021년 사순시기 시각장애인선교회 라파엘사랑결준본당 방문

“보이지 않는 곳곳에 빛으로 살아갈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주님의 빛 안에 모여 서로에게 더 밝은 빛을 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 찬미 예수님!

3월 26일 반포 카리타스 임원과 교우분들이 개포동에 위치한 천주교 성라파엘 사랑결성당을 찾았습니다. 2019년 방문 이후 2년만입니다. 올해로 5년째 이 준본당을 지키고 계시는 김용태 요셉신부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왼쪽부터 권화순 비비안나님. 고혜숙 율리아님, 김용태 요셉 신부님, 김성희 베로니카님, 황수연 안젤라

 

   10시 30분 평일미사 시작시간에 맞추어 도착하니 성당 입구에서 김용태신부님이 한 사람씩 직접 체온을 측정해 주셨습니다. 평소에도 체온 측정은 신부님 담당이시라고 합니다. 미사가 막 시작되려는 찰나, 김신부님께서 이것을 먼저 좀 보아야 한다고 저희들을 사무실 한 쪽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쌀 여러 포대가 테이블 옆에 쌓여있고, 테이블 위에는 이 쌀들을 소분해 넣은 페트병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습니다.

반포성당 교우분이 보내주시는 쌀포대(왼쪽)과 소분되어 주인을 기다리는 쌀들(오른쪽)

     알고보니 이 쌀들은 2년 전 방문때 함께 가셨던 반포본당 김덕자 아가다님께서 그 후로 매달 열 포대씩 한 번도 빠짐없이 보내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2리터들이 페트병에 나누어 담아 주일 미사때 오시는 시각장애인들께 나누어드리면 현재 미사 참석인원인 80명이 한달동안 밥을 지어 먹을 양이 신기하게도 딱 맞는다고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베풀고 계셨던 이 소중한 나눔 덕분에 같은 반포성당 소속인 저희들에게도 칭찬과 감사의 말씀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쌀로 지은 밥을 한 번 드셔 본 분들마다 세상에 이렇게 향기롭고 밥맛이 좋은 쌀이 어디서 나느냐고 궁금해 하신다네요. 아닌게 아니라 생쌀을 그대로 냄새 맡아 보아도 고소한 향기에 침이 저절로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아무 쌀이나 그냥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쉽게 구하지 못하는 귀하고 좋은 쌀을 보내주셔서 평소 이런 맛난 쌀밥을 드실 기회가 많지 않은 라파엘성당 교우들이 모두 입호강을 제대로 한다고 고마와 하셨습니다.

     이어서 시작된 미사중에도 감동 받을 일이 참 많았습니다. 해병대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폭발사고로 두 눈과 두 손, 그리고 한 쪽 귀까지 모두 잃으신 양지수 미카엘 총회장님은 앞이 보이지 않으신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활기찬 카리스마로 “반포성당에서 오신 아름다운 자매님들’을 환영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날 원래 해설을 맡은 분이 참석하지 못하여 갑자기 해설자를 맡으신 김원석 바오로님은 점자로 된 매일미사를 손으로 짚어가며 한마디도 틀리지 않고 미사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눈이 잘 보이는 사람들이 종이에 인쇄된 글을 보면서 해설을 할 때도 떨리고 실수하기 일쑤인데 점자를 더듬으며 어떻게 저렇게 완벽하게 하실수 있을까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처음에 성당에 들어올 때 한 쪽 어깨에 메고 오신 것이 그냥 가방인줄 알았는데, 이것이 바로 녹음기 기능도 겸한 점자 읽어주는 기구라고 합니다.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는 설명을 듣고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굿뉴스를 접속하여 매일미사 내용을 눈으로 읽는 것과 동일한 원리라고 합니다.

점자전환기를 손으로 읽어가며 미사 해설을 하고 계시는 김원석 베드로님

 

     미사가 끝나고 난 뒤 달리 모일 장소가 없어 5평 남짓한 성당에 그대로 옹기종기 앉아서 김용태신부님으로부터 가톨릭 시각장애인 선교회와 라파엘 사랑결 준본당의 역사에 관하여 설명을 들었습니다. 가톨릭 시각장애인선교회의 시작은 1979년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가톨릭맹인선교회를 설립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장애의 아픔을 몸소 체험하면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어려움 속에 살고 있는 많은 시각장애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대부분 안마사등이 고달픈 직업을 가진 이분들이 어렵게 모은 돈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1989년 사회복지법인 하상복지회를 설립하였고, 1993년 3월에는 서울시의 도움을 받아 개포동에 하상장애인 종합복지관을 세웠습니다.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하상장애인종합복지관

 

     하상복지회의 구성 인원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였던 만큼 모아진 기금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성당을 지을 수도 있었으나, 종교를 떠나서 지역의 장애인 이웃들과 함께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복지관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물론 건립 당시 이 복지관 건물 지하실에 시각장애인들의 성당인 라파엘 사랑결성당의 사무실과 회의실이 배치되었고, 강당을 성전으로 사용하면서 매 주일 2백여명의 신자들이 모여 미사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점자 주보와 성가집으로 미사를 드리는 라파엘 사랑결 성당 교우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서울시측에서 하상종합복지관을 특정 종교(가톨릭)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가톨릭 시각장애인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하상복지회의 설립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결국 그래서 5년 전 복지관 지하에 있던 성당 사무실과 모임방등을 철수하고, 그 바로 옆에 위치한 석탑플라자 건물 6층 한 쪽 작은 구석을 월세로 임대하여 절반은 성당 사무실 겸 시각장애인선교회 본부로 사용하고 절반은 평일미사를 드리는 작은 경당으로 꾸며서 지금처럼 지내게 된 것입니다. 그나마 주일 교중미사는 예전처럼 복지관 강당에서 드리고 있지만 이 또한 장소를 옮겨달라는 요청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어 3년 전부터 라파엘 사랑결성당 건축을 위한 모금을 시작하였는데, 이 또한 코로나19로 인하여 작년 한 해는 시계바늘이 멈춘 것 같은 상태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건축기금 마련 이외에 또 다른 현실적인 어려움은, 현재 근처 지역 아파트의 재건축이 임박하여서 건물 내 사무실 공간이 매물로 나오는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하상복지관 근처에 있는 곳에 성당을 마련해야 하는데 난감한 상황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태신부님께서는 ‘기도를 더 많이 해야 할 시점’이라고 담담히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반포본당 교우들도 이 기도에 힘을 보태었으면 좋겠습니다.

라파엘사랑결성당(준본당) 아기예수님상과 성모님상

     직접 가서 보면 라파엘 사랑결성당은 정말 작습니다. 2년 전 찾아갔을 때는 장의자가 네 개 빠듯이 채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코로나 19 방역수칙에 따라 2미터씩 거리를 두고 의자를 놓으니 6명 밖에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평일 미사는 이렇게 작은 공간에서 드리지만  하상복지관 강당에서 모이는 주일 교중미사때는 미사 후 함께 점심을 먹는 친교 모임과 레지오등 타 본당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어쩌면 더 활발하게 이어 왔었습니다.  그런데 라파엘 사랑결성당은 정식 본당이 아니고 ‘준본당‘입니다. 감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본당과 같이 모든 성사도 주어지고 신자들의 열심은 더 뜨겁습니다. 그래서 감실이 있는 어엿한 성전과 부속 공간을 갖춘 성당을 세우고 싶은 바람이 더욱 간절할 수 밖에 없습니다.

     1970년 22살 나이로 참전한지 불과 5개월만에 두 눈, 두 손, 한쪽 귀를 잃는 중상을 입었을 때, 당시로는 종교가 없었던 양지수 미카엘 총회장님은 “하느님 살려주세요, 다시 살려주시면 남은 생을 이웃을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외치고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귀국 후 재활훈련을 하며 주님의 빛을 가슴속 깊이 받아들인 미카엘 총회장님 만큼이나 기막힌 인생사를 모두 하나씩 지니고 계시는 라파엘 사랑결교회 교우들이 편하고 기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성당이 하루빨리 지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올 사순시기에 반포 카리타스를 통하여 후원해 주신 300만원의 성금이 그 액수는 비록 크지 않지만 라파엘 사랑결성당 식구들에게 부디 응원과 격려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