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사순시기 요셉의원 방문

요셉의원 이념 :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환자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며,

                      그들의 자립을 위하여 최선의 도움을 준다.

 

 

+ 찬미 예수님!

     사순 제5주간 화요일이 저물어가는 저녁, 반포성당을 대표하여 카리타스 회원 세 사람이 영등포역 근처에 위치한 요셉의원을 찾았습니다. 요셉의원은 故선우경식(요셉) 원장님이 1987년 서울 신림동에서 개원하신 것이 그 시작입니다. 가톨릭 평신도가 빈손으로 시작한 무료병원이 30년 넘게 성공적으로 유지가 되어 온 것은 전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고 합니다. 2013년에는 필리핀 마닐라 말라본 시 마이실로 지역에 ‘필리핀 요셉의원’을 부속병원으로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저희 반포본당에서는 2019년 가을 불우이웃돕기 바자회를 통하여 모아진 성금의 일부로 이 필리핀 요셉의원을 도운 바 있습니다. 오늘 방문때는 반포본당 교우이신 한분도 사무국장님께서 늦은 시간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요셉의원의 역사 및 현황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선우경식 요셉 원장님

     설립자 선우경식 원장님의 생애는 워낙 유명하지만 언제 다시들어도 처음 접하는 것처럼 감동이 밀려옵니다. 가톨릭의대를 졸업하시고 미국 뉴욕에서 의학공부를 마치신 뒤 국내 종합병원 내과 과장으로 전도유망한 성공의 삶이 탄탄대로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을 때인 1990년대 초, 신림동 달동네에 무료 진료봉사를 나가셨다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상설 병원의 설립이 필요함을 절감하시고 1987년 당시 신림동 시장 안쪽에 작은 병원을 맨손으로 세우게 됩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료병원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느냐고 손사래를 쳤다지만, 약이 떨어지면 누군가 약을 보내주고 돈이 떨어지면 누군가 후원금을 보내주며 자원봉사 의사가 떠나가면 또 신기하게 후임자가 나타나는 기적이 되풀이되면서 요셉의원은 오늘도 건재합니다. 선우경식 원장님이 생전에 하신 말씀 중 어쩌면 가장 유명한 “의사에게 한 푼도 줄 수가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가 아닌가?” 라는 질문은 언제 들어도 마음 가장 깊은곳을 울립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셨던 선우경식 원장님은 평생 결혼도 하지 않으시고 2008년 4월 위암으로 선종하시기 전까지 21년간을 한결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영등포의 슈바이처”라고 불렸던 선우 원장님의 버팀목이자 원동력이었을 신앙을 기리고자 영등포 요셉의원 2층에 위치한 경당에서는 지금도 매일 오후 직원들이 모여 성무일도를 바치신다고 합니다. 

행정원장을 맡고계시는 조해봉신부님과 반포 카리타스 박소영 아녜스 회장 (왼쪽), 황수연 안젤라 사회사목분과장 (오른쪽)

 

     이어서 분도 사무장님과 함께 병원을 둘러보며 요셉의원이 운영되는 방식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습니다. 말씀중에 이 병원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등포 근처 노숙자들의 신체적인 병을 치료함 못지 않게 마음에 난 상처도 보듬기 위하여 여러 방면으로 애를 쓰신다고 했는데, 사실 많이 낙후되고 열악해 보이는 시설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노력이 곳곳에서 여실히 드러나 보였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4층에 위치한 ‘도서관’입니다. 

도서관 전면 (사진 오른쪽에 한분도 사무장님)
요셉의원 도서관 (후면)

위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전문적인 사서 관리 시스템으로 분류되고 인식표가 붙어있는 다양한 도서들이 삼면 벽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병원을 찾아오는 노숙자들에게 이 도서를 대여하는 프로그램이 무척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과거형으로 말씀드린 것은 짐작하셨겠지만 이또한 코로나19로 인하여 잠정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분도 사무장님께서 이곳을 찾는 노숙자들 모두 그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면 기가 막히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시는데, 실제로 그 중에는 상당히 고학력자인 분들도 많고 원하는 책을 구입해달라고 신청할 때 써 내는 글씨가 명필 그 자체인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들어보면 참 가슴아픈 이야기입니다. 요셉의원이 기증을 환영하는 물품중에 ‘도서’가 포함되어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이 도서관 공간은 직원들의 회의 장소로도 이용되지만, 매우 덥거나 추운 날씨에 급식을 받으려고 지나치게 일찍 모여든 노숙자들이 바깥에서 고생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도서관으로 안내해서 책도 읽고 노래방 기기도 이용하도록 한다고 합니다. 또한 요셉의원에서 운영하는 알코올 중독 치료 프로그램(AA, Alcoholics Anonymous)의 교육도 여기서 진행됩니다. 사실 오늘 와서 보니 요셉의원의 옹색한 공간들은 모두 여러 가지 용도로 알뜰히 겹쳐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요셉의원 병리검사실

     그런 의미에서, 이 손바닥만한 병리검사실도 제게는 경이 그 자체였습니다. 3~4평 남짓한 공간에 최소한의 검사기기들을 배치해 놓은 아이디어도 놀랍지만, 공복 환자들을 위한 달걀과 두유(세심하게  저당두유를 갖추어 놓으심)까지 뒤 쪽에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평소에 잘 먹고 지내는 사람들이야 한두끼 굶는 것이 아무일도 아니지만, 영양상태가 나쁜 노숙자들은 검사를 위하여 공복을 지키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채혈이 끝나자 마자 그자리에서 속을 채울 수 있는 고영양 음식을 저렇게 주신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자상한 배려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진료과 별로 마련된 공간들을 둘러보다가, 경당 뒤쪽에 위치한 치과병원의 의사선생님마다 각자 쓰는 진료기구를 넣어두는 서랍장에서 눈에 뜨이는 무엇인가를 발견했습니다! 요셉의원이 아직 신림동에 있던 시절부터 치과봉사를 해 오신 이충규 요셉 前 사회사목분과장님이 그 주인인 서랍이 맨 위쪽에 이렇게 있었습니다…

이충규 요셉 前 분과장님의 진료도구 서랍

      요셉분과장님은 전문의가 되신 직후인 1991년 신림동 요셉의원을 스스로 찾아가서 자원봉사를 시작하신 이후 지금까지 계속 진료를 해 오고 계십니다.  사실 요셉의원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진료과목이 바로 치과라고 합니다. 일반병원에서는 치료비가 너무 비싸 엄두도 낼 수 없는 시술들을 이곳에서는 무료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인데, 소문이 퍼져서 서울시내는 물론 전국 곳곳에서 달리 도움받을 곳이 없는 환자들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이가 나빠져서 음식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면 이것이 다른 병의 원인이 되므로 너무 늦지 않게 치과치료를 받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요셉의원에서 일반 치과 못지 않은 수준의 치료를 제공 할 수 있는 것은 재료와 기구를 기부해 주시는 고마운 손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병원에서 운영하는 약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이러한 약이 모자른다 하는 상황이 되면 신기하게 그 약을 기부하겠다는 단체가 연락을 해 온 적이 많다고 합니다.

요셉의원 약제실 (이충규 요셉 前 사회사목분과장)

     선우경식 원장님께서 요셉의원 초창기 많은 어려움을 겪으시던 때에 후원자가 3천명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것이 없다고 하셨다는데, 지금 현재 요셉의원은 연인원 90여명의 의료진봉사자를 포함해 600여명의 각 부문 봉사자와 약 12,000여명의 후원자들 도움에 힘입어 하루 평균 100여명씩 (년평균 약 24,000명) 진료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하여 현재 진료수는 현저하게 줄었고, 응급환자 처치와 처방약 처방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13년 필리핀 마닐라 인근의 도시빈민들을 위하여 만들어진 필리핀 요셉의원도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코로나19 방역이나 치료가 열악하여 더욱 고생이 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교육과 무료급식을 중심으로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도움을 베푸는 노력을 쉬지 않으며 지난 한 해를 어렵게 버티어 왔는데, 반갑게도 올 3월부터 소아과 진료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진료가 다시 재개된 만큼 도움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듯 합니다

필리핀 요셉의원 원장으로 계시는 서울대교구 장경근 안드레아 신부님과 아이들

 

올해 3월 어렵게 재개된 필리핀 요셉의원 소아과

 

     오늘 영등포 요셉의원을 찾아 분도 사무장님의 열정 가득한 설명을 듣고 시설을 둘러보며 가장 많이 느낀것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한 사람의 꿈이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까지는 그 노력을 장하게 여기시고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끌어주셨을 주님의 손길이었습니다. 현재 요셉의원은 지금 위치한 영등포역 인근의 재개발사업 착수로 당분간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운영되어야 하는 어려운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그러나 이 위기 또한 잘 넘어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개원 34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요셉의원의 이 기적과도 같은 경주에 반포성당이 작으나마 힘을 보탤 수 있게 해 주신 카리타스 후원회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병원 대기실 벽면에 걸린 아기예수님과 성요셉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