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반포성당 첫 주일 미사 강론]

2018년 9월 2일 연중 22주일 나해 – 반포성당 부임 미사 강론

 

1.
남으로 큰 강이 흐르니, 물을 구하기 쉽고, ,
주변에 넓은 평야가 있으니, 물길과 땅길이 열려 있는데다가,
여러 산들이 둘러 있어서 외적을 막기에 좋다 해서,
한양이 조선의 도읍이 된 것이 1394년입니다.
이곳을 찜하고 한양을 설계한 정도전의 안목이 놀라운데, 그 때 그분께서
한강 이남, 요즘 강남이라고 부르는 이 땅을 어떻게 보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후로 576년 동안,
이곳은 비가 내려 물이 불면 영락없이 물에 잠기던 한강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너르고 반듯한 소반 모양의 물가라 해서,
소반 盤 물가 浦, 반포라고 불리면서, 도무지 쓰임이 없던 이 지역은
그저 지도 상으로만,
한강 인도교 건너 흑석동 성당에 속한,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즈음, 흑석동 성당으로 부임하신 박병윤 신부님께서는
그때 벌써 이 지역에 감도는 천지개벽의 기운을 감지하셨고,
여기에 소위 [아파트 단지]라는 새로운 주택 개념이 처음 들어서던 1973년, 이곳에 반포 공소를 세우시고, 3년 후에는 본당으로 승격시키시면서, 아예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그러나 박병윤 신부님을 반포 본당의 초대 신부로만 기억하신다면, 그것은 그분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 신부님께서는 그때 벌써 이른바 강남 시대를 내다 보고 계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이곳에 반포 공소를 내시면서, 동시에,
당시 말죽거리라고 부르던 양재동에 본당을 세우시고, 그 주임을 겸임하시면서 그 성당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반포 본당을 떠나시기 전, 서초동 성당을 분가하시고, 또 방배동 성당을 내시더니, 다시 서초동으로 가셔서 성전을 지으시고, 그 옆의 역삼동 성당으로 옮기셔서 또 그 성당을 지으셨으니, 오늘날 강남이란 박병윤 신부님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을 것이고, 그분을 가히 강남의 사도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당시 강남 개발 만큼이나 획기적인 건축물이 바로
박 신부님의 안목이 배어있는, 지금 우리가 모여있는 이 성전입니다.

 

밖에서 보시면, 지붕이 삼각형인데 그것은
열두 사도의 후계자인 주교님들이 쓰시는 주교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안에서 보면 크고 작은 두 개의 삼각형 지붕이 엇갈리는데,
그 사이에 유리화가 있고,
그 유리화를 통해서 들어오는 빛이 제대를 비추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새로 개발되는 땅에 걸맞게
획기적인 조형과 현대적인 공간 배치로 이루어진 이 성당은
국전 건축부문에서 대통령 상을 수상하신
건축가 유희준 교수님의 작품으로
예나 지금이나, 한국 교회에서
가장 아담하고 아름다운 성전 중에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2.
그러나 강남 개발이 이 성전처럼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3년 전인가, 당시의 사회상을 그린 영화가 나왔는데 그 제목이 [강남 1970] 입니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선전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1970년, 강남 땅을 향한 위험한 욕망이 춤추기 시작한다.”

 

판잣집이란 걸 기억하십니까?
호적도 제대로 없는 고아로 넝마주이를 하며 살지만
그래도 친형제 같던 주인공들에게는 모든 것이었던 판잣집이,
강남 개발 바람에 헐리면서 영화가 시작되고,
음모와 배신, 욕망과 복수를 거쳐,
결국 모든 인간 가치가 파탄 나는 비극으로 끝납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소설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도 [강남 1970]을 보셨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열되는 단어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어느 하나, 이 영화에 들어맞지 않는 단어가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45년이 흘렀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재건축이란 말을 자주 들었는데,
요즘 서초구나 강남구를 다녀보면,
이제는 재개발이라고들 하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아예 단지 전체가 새로 개발되는 것이고, 강남 전체가 들썩이는 겁니다.

 

강남은 이제 제2의 개발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강남 개발의 첫 세대에 그랬듯, 이곳 반포 단지는
강남의 제2세대를 여는, 재개발 태풍의 눈에 들어있습니다.
이제 들이닥칠 어마어마한 차세대, 신세대, 반포 단지 안에서,
우리 반포 성당의 대지 600평은 너무 비좁습니다.

 

저는 반포 성당의 제10대 주임신부라는 분에 넘치는 소임을 받고 나서,
지난 며칠 간,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부수고 다시 짓기에는 이 성전이 너무 귀하고 아깝고,
그렇다고,
그저 이렇게 살기에는, 교회의 다음 세대에 대한 무책임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서너 해 후, 여기 들어 올 그 큰 단지의 교우들을 맞기 위해,
“무언가 한번 해 보자” 하고 팔을 걷어 부치자면, 그때가 지금인데,
정작 교우들은, 다시 들어 오기 위해 떠나야 하는 때가 지금입니다.

 

강남 곳곳에 널직널직한 큰 성당을 지으신 박병윤 신부님,
저를 아들처럼 사랑해 주셨던 신부님께서는
왜? 하필 이 반포에는 600평만 마련하셨을까?

 

그럼, 이 성전이 몇 평이나 되었더라면 좋았겠습니까?
재개발이 끝나면 들어 온다는, 몇 천 세대를 생각하다 보면,
제 욕심이 점점 커져서,
새 반포 성당의 부지가 천 평을 넘어야겠고, 이천 평도 모자라고, ~그러다가,~
이 거대한 초 현대의 마천루 아파트 단지 안에서 숨이라도 쉬려면,
아무래도 삼천 평은 되어야겠다고 불어나는 게 순식간인데,
그 기분 좋은, 허황된 꿈이 비누방울처럼 터지고 나니,
깨닫게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정작 비좁은 것은 성당 부지가 아니라, 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글쎄, 아마도 박 신부님께서는,
우리가 비좁게 살아도, 비좁게 모여도,
우리의 마음은 비좁지 않아,
오히려 더 넉넉히 살고, 오히려 더 정겹게 모일 만한,
딱 좋은 평수의 땅을 마련하셨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4.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이 성전과 함께 살아오신 토박이 교우들께서는, 새로 온 주임신부가
이 아름답고 정겨운 성전을 허물지 않고 지키겠다는 약속을 한다고
좋게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또 어떤 교우들께서는 제가 차세대 강남 시대를 맞아
과감한 새 성전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그분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로 들으실 뿐입니다.
왜냐하면 제게 아무런 대책도, 답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에 하나,
우리가 성당 건물의 앞날만을 생각한다면
그 모두가 다,
[강남 1970]의 개발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 [강남 2018]일 뿐이고,
그것은 또 다시 춤추는 위험한 욕망이 아닌가 합니다.

 

5.
내년이면 이 성전이 완공된 지, 40년이 됩니다.
40년이 개발의 한 세대였다면,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四旬절을 시작할 때 입니다.

 

이 성전이 완공되던 해, 성전 지붕 위에 닭 한 마리가 올려졌습니다.
우리나라의 성당 건물에는 처음으로 올려진 닭이었습니다.
그 닭이 어떤 닭입니까?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목요일 저녁,
체포되어, 수난의 밤을 꼬박 새신 후, 새벽이 밝을 때,
그 귀하고 거룩한 십자가의 금요일, 그날 새벽, 세 번 울던 그 닭입니다.

 

베드로의 눈이 예수님의 눈과 마주친 그 순간에 울어 버린 닭입니다.

 

베드로가 얼떨결에 그랬다고 변명하면,
같은 처지인 우리는 모두 공감하고 이해하지만,
실은, 이른바 “준비된 배신”을 행했던 베드로. 그의 영혼을 흔들어 깨쳐주고,
경악과 비탄과 참회의 눈물이 터져 나오게 했던 그 닭입니다.

 

당시엔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버스가 다니던 큰 길에서도 보이던 닭이었지만,
이제는 점점 높아지는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여,
점점 가려지고, 막혀지고, 숨겨지는 닭입니다.

 

그 닭을 이 지붕 위에 올리시면서,
박병윤 신부님께서는 무엇을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일찍이, 강남 개발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무엇을 빼앗을 것인지
환히 내다보셨던 신부님께서는
새로운 사순이 시작될 이 무렵, 행여나,
우리 후손 세대가,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질까
몹시 걸리셨던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반포 성전의 닭이 다시 울게 해야 합니다.
아니, [강남 1970] 부터 지난 사십 년 동안, 매일 새벽, 세 번 씩, 울고 있었던
그 닭의 울음을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그 울음을 듣기 위해,
더 높이 오르려고만 하는 이 세상에, 우리를 더 낮추어야 하고,
더 넓게 차지하려는 이 세대 보다, 우리의 마음이 더 넓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논리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엉뚱하게 하느님의 성전을 생각하는
이 모순과 배신에서 참회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눈을 맞추어야 합니다.

 

풍수지리에 통달했던 정도전은
궁궐 자리를 보느라, 미처 못 보았을지 몰라도,
여기서 멀지 않은 한강변 물가에서, 우리 순교 선열들은, 목이 잘리면서,
이미, 반포 땅, 강남 땅,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그 땅을 알아 보셨습니다.

 

이곳 반포는 강이 옆에 있으니, 세례 드리기 쉽고,
물가에서 순교하신 성인들이 둘러 계시니, 악을 막기에 좋으니,
우리가 여기에 정겹게 모이면, 여기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길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 반포 성당에 새로운 四旬절을 주시니,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