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성당 교우들께 드리는 말씀-210226]

반포성당 교우들께 드리는 말씀-210226

 

꼭 1년전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성당 문이 닫히고 미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지난 해 재의 수요일, 2월 2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366일이 빠르게 지났습니다. 그동안,

성당 문은 다시 열렸다가 또 닫혔다가, 가까스로 10%가 열리더니 이제 20%입니다. 그나마 이게 어디입니까? 큰 횡재를 한 기분입니다.

 

2019년 가을에는 행사도 참 많았습니다. 모두 힘들다고 하면서 좋았습니다.

2020년 이맘 때에는 사순절 특강을 포함해서 일정이 꽉 찬 사목계획을 주보에 실었었고, 입교 성사의 계획도 뒤죽박죽이다가 50일이나 뒤늦게 겨우 세례식을 가졌고, 견진성사는 두 번이나 연기한 끝에 취소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환기가 되지 않는 지하회합실을 닫은 것이 꼭 1주년입니다.

 

모든 것이 멈추었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시끌벅적, 야단법석이어야 할 성당이 급속냉동고에 들어간 참치처럼 얼어버릴 때, 성당을 꾸리는 마음이 쳐지고 서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뭐 사실, 얼마나 떨어져 있었다고, 어쩌다 성당에서 만나 뵈면 반갑기 그지 없는 교우들이 계시고, 무슨 일만 있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팔 걷고 나서시는 분들의 봉사를 보면서, 힘을 얻고 용기를 냅니다. 내년 2월 26일은 어떨까요? 올해 백신을 맞고 나면 차차 기지개를 펴겠지요. 봄은 언제고 좋지만, 내년 봄은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얼릴 때보다 녹일 때가 조심스럽습니다. 서두르면 망칩니다. 지치고 힘들지만 아직 마음을 풀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사태에 익숙해졌을 뿐이지, 코로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확산세가 수그러진 것도 아닙니다.

 

현재 성전 개방 시간은 평일미사 20분 전, 주일미사 30분 전입니다. 사회에서 그나마 방역이 먹히는 것이 5인이상 집합금지 때문이라면, 그래도 우리 성당이 코로나에서 무사한 것은 이러한 규칙이 철저히 지켜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에 이런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소수의 분들과 마찰이 있었지만, 이내 의당 그러려니 할 정도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이런 규칙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릅니다. 좋은 게 좋다는 분도 계시고, 그렇게 다 좋게 하려고 적당히 하다 보면, 원칙이 무너져서 모두에게 좋지 않게 된다는 분도 계십니다.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어느 한 성향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방역과 같은 일에는 원칙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건 분명합니다.

 

성전이 문을 연 것은 정규미사를 위해서 입니다. 처음 성당 문을 다시 열고 미사를 재개했을 때, 성전에서 돌아다니며 인사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처음에 그랬다면 지금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지금도 처음과 달라진 게 없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미리 들어오거나 늦게 남아 기도하시는 마음은 고맙습니다. 사순절을 지내며 그런 마음이 더 클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미사에 오시는 교우들을 돌려 보내는 일을 겪게 됩니다. 더 큰 걸 놓치게 되고 더 오래 멈추어야 합니다. 남들은 다 하는데? 그것이 우리가 그렇게 할 이유는 아닙니다.

 

성전 문을 지키는 방역봉사자들께서는, 처음처럼, 성전 출입 시간을 철저히 지키시기 바랍니다. 교우들께서는, 처음처럼, 참아주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내년 2월 26일이 올해 2월 26일보다 낫게 됩니다.

 

꼭 1년되었습니다. 2년으로 끌고 가면 안됩니다. 3년은 더더욱 아닙니다.

 

반포성당의 모든 봉사자들의 사랑과 노고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코로나로 힘든 이웃들과 의료인들을 위해 계속 함께 기도합시다. 성당에 모여 십자가의 길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쉬운 만큼, 극기와 절약으로 모은 정성을 이웃과 나누며 거룩한 사순 여정이 계속되기를 빕니다. 축복합니다.

 

주임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