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발병 1주년에]

210120-코로나19 발병 1주년에

 

1.

오늘 아침도 영하8도인데 낮에는 날이 풀린단다. 왜?

오늘이 가장 춥다는 大寒이기 때문이다.

 

절기로 보면, 입동(立冬)에서 소설(小雪), 대설(大雪), 동지(冬至), 소한(小寒)으로 갈수록 추워지는 법인데, “소한의 얼음이 대한에 녹는다“는 속담은 무얼 말하나?

 

24절기가 생긴 것이 5천년전인가, 3천년전인가? 그 이후의 세월에,

겨울이 짧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한 추위가 앞으로 밀려서 소한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나라 만의 변화가 아니고, 요즘에 그 변화는 너무 급격하다. 어렸을 때 들었던 삼한사온은 이미 없다. 북극의 빙하가 급격히 녹고 있고, 그래서 북극의 바람이 어찌 어찌해서 내려온 것이 이번 추위라고 한다. 대만과 스페인에도 혹한이 왔다.

 

2.

오늘은 또 무슨 날인가?

중국 우한의 호흡기 질환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견된 날이다.

코로나19가 한국에 들어온 지 1주년이다.

 

박쥐를 먹었다든가? 천산갑을 먹었다든가?

AIDS니, MERS니, CORONA니 모두

인간이 자연의 영역을 쓸데없이 침범하여 불러들인 재앙이다.

하룻밤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든가? 무지와 오만은 같은 뜻이다.

 

3.

신앙이란 멀리 보는 것이고, 뚫고 보는 것이다.

인간의 눈은 앞을 보게 되어있다. 자신을 보려면 주위를 보아야 한다.

주위를 보면서 자신을 살피는 것이 회심이다.

그렇지 않은 신앙은 기복으로 흐른다. 그렇지 않은 회심은 자기 만족일 뿐이다.

 

빙하가 녹아도, 더 고약한 바이러스가 나타나도, 우리 세대는 머지 않아 죽는다.

무지하고 오만해도 자식은 사랑하니까, 우리는 자녀들이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우리는 이 재앙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있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에게 받은 기복신앙과 자기 만족적 회심과 근시안적 인생관을 그들의 자녀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4.

열심히 믿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옳게 믿어야 한다.

바리사이 만큼 열심히 믿은 사람들 없다. 양심을 다 했지만, 그릇된 양심이었다.

 

율법은 편리하다. 주관적 결단과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지 않다.

구원의 확신을 조급하게 얻으려 할 때 율법만큼 편리한 것이 없다.

 

그런 신앙의 편리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은근슬쩍 우리를 사로 잡았다.

현대가 예배하고 제물 드리는 우상은 일회용품이다.

우리는 이 우상에게 자신을 희생하고 자녀를 희생하는 인신제사를 바치고 있다.

 

안식일이란 그냥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숨을 쉬는 날이다.

창조를 이루신 하느님, 사람을 만드신 하느님 옆에서 숨을 쉬는 날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은 해발 1800미터라서 춥고, 분지라서 환기가 안된다.

가난하니까 겨울에 손에 잡히는 대로 땐다. 고무 타이어도 땐다. 온통 뽀얗다 못해 캄캄하다. 살자고 때는 데, 숨을 쉴 수가 없다. 스스로 번제를 바치고 있다.

 

하느님 옆에서 쉬자고 안식일인데, 숨을 쉴 수가 없어서 복음과 카불이 이어졌다.

 

시대마다 사명이 있다. 김대건 신부님은 그 시대, 그 사명을 다하셨다.

그분을 기리는 것은 우리가 우리 시대, 우리 사명을 다 하고자 함이다.

 

정말 그런가? 우리 사명은 무엇인가? 그런 생각도 없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며, 무엇을 바라며 그리 조급하게 미사 재개를 원했는가?

 

大寒이 小寒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 예수님께서 노기를 띠시고 몹시 슬퍼하셨다.

오그라든 손은 우리 손이다. 창조주 하느님의 숨을 느끼면 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