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반포성당 교우들께] 반포성당 교우들께 드리는 말씀

  1. 이번 주일, 5월 23일 토요일 저녁부터 미사 전 방역 절차 중에 명단 작성 방식이 바뀝니다.

 

판공성사표에는 교우 개개인의 바코드가 붙어있습니다. 이번 주간에 여성 구역장, 반장께서 일일이 판공성사표를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그러면 바코드를 손전화로 촬영하거나, 오려서 전화기나 카드 등에 붙여 두었다가, 성전에 들어오실 때 봉사장에게 제시하면 됩니다. 이번에 나누어 드리는 판공성사표는 바코드를 드리기 위한 것이니, 버리셔도 됩니다. 나중에 본당에서 판공성사를 드릴 수 있을 때에 다시 나누어 드릴 것입니다.

 

구역장 반장 님들을 통해서 판공성사표를 받지 못하거나, 잃어버린 분들, 그리고 반포성당 관할 밖인 20구역에 속한 교우들은 사무실에 오시면 됩니다. 이런 분들이 몰리면 사무실이 붐빌 겁니다. 그러니 미사 전에 일찌감치 미리 오셔야 합니다. 아니면 이제껏 하던 방식대로 명단을 작성하고 미사에 참례하신 후에 사무실에 들리시기 바랍니다. 반포성당에 교적이 없는 분은 예전처럼 명단을 작성하면 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요즘 우리 사무원들은 착하고 친절하고 예의 바른 교우들입니다. 늘 고마운 마음을 나누어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포본당의 여성 구역장, 반장 님들께서 이번에 다시 수고하시겠습니다. 이웃의 교우들을 방문하는 일이 실제로 해 보면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분들은 확진자도 아니고 외판원도 아닙니다. 그저 신앙공동체를 위해 바쁜 시간을 내서 틈틈이 봉사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께 미리 감사 드리며 고개 숙여 축복을 빕니다.

 

  1. 코로나19의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주일 미사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고, 고해성사를 미루어도 좋다고 하고, 주일학교와 소공동체 모임과 단체 회합은 아예 중단되었습니다. 이를 슬프고 안타깝게 여기는 분도 계시고, 신앙적 의무의 면제를 편리하게 여기는 분도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시대의 징표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전하십니다. 식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지난 주일 주임신부의 강론을 여기 붙입니다.

 

축복합니다.

 

반포성당 사제단, 수도자, 총회장 드림.

 

[2020. 05. 17. 강론]

 

1.

올해가 서기 몇 년입니까? 2020년입니다.

그건 예수님 탄생을 기준으로 하여 BC와 AD를 나누는 서양의 역법입니다.

BC는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 Before Christ이고, AD는 주님의 해 Anno Domini입니다. 올해가 AD 2020년입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리아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시리아에 전투가 없습니다. 어느 강대국의 군대도 해 내지 못한 일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해 냈습니다. 어떤 박해자도 성당 문을 닫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 돈을 거두어만 가던 나라에서 큰 돈을 그냥 나누어 준다고 하니,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무슨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입니다.

 

이런 일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겠지만, 세상이 다 아는 것은 이제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강산이 변하는 데 10년이라는 데, 세상이 바뀌는 데 불과 두 달 반이 걸렸습니다.

 

올해 안에 백신을 만들겠다고 미국 대통령이 장담했지만, 그건 그 때 가봐야 알 수 있는 일이고, 설혹 백신이 나온다고 해도, 세상은 결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코로나가 세상을 바꿀 것이니 앞으로는 년도를 따지는 역법도 바뀌어서, B.C.는 Before Corona가 되고 A.D. 는 After Disease로 바뀔 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역병이 역법을 바꾸는 세상에서 이제는 우리의 삶이 바뀔 것이고, 삶이 바뀌려면, 바라보는 눈이 달라져야 하고, 생각이 뒤집어져야 합니다.

 

KBS에서는 지난 주간에 4부작, [대한민국 길을 묻다]를 방영하였습니다.

실업 Pandemic, 경제 lockdown, 2차 감염 파도의 전망, 환경 파괴에 대한 성찰 등을 깊이 있게 다루면서,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지, 대한민국이 길을 물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나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공기가 깨끗해지고, 물이 맑아졌고, 5년 전, 메르스 사태 때에는 방역에 구멍이 뚫렸었지만, 그때의 실패가 이번에 우리 나라가 방역에 성공을 거두고 세계의 모범으로 떠오르는 데 도움이 됐고, 또 SARS나 MERS가 없었다면 중국의 온라인 유통 재벌인 [알리바바]가 나올 수 없었다고 합니다.

 

종교계에서도 그랬습니다.

신천지와 일부 작은 개신교회에서 확진자가 폭발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이기적 종교행태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이웃의 안전과 생명과 행복을 담보로 자행되는 나홀로 구원되고, 몇 명만이 선택 받아 구원된다는 생각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이 같이 가야 한다는 인식이 퍼진 것은 큰 수확입니다.

 

3.

그러면, 우리 교회는 어떻게 변하고 어떤 위기를 기회로 삼을 것입니까?

 

집에 앉아서 평화방송 미사를 보면 되는데, 꼭 주일 미사에 몸으로 와서 참례해야 합니까? 아마 그래서, 전부터 미사에 와서 기도한다고 하지 않고, 미사를 “본다”고 했나 봅니다. 이제 주일 미사가 신자의 의무라는 인식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모든 죄를 용서해 준다고 교황님께서 전대사를 주셨는데, 굳이 고해성사를 보아야 합니까? 실제로 우리 본당에서는 2주전부터 개별 고해성사를 드리는데, 성사를 보신 분은 단 한 분 뿐이었습니다.

 

이제 생활 방역이라는 새로운 삶의 틀 안에서 온라인 수업과 비대면 진료가 대세인 즈음에, 과연 구역과 반에서 해오던 소공동체 모임은 어떤 전망을 가질 것인지, 한국 가톨릭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었던 레지오 회합은 살아 남을 것인지, 성서공부야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 있겠지만, 주일학교를 비롯한 신앙교육은 어떻게 변해야 합니까?

방송국 하나면 신앙 생활이 다 되는 것 같은 시대에 과연 본당의 역할은 무엇이고, 과연 그 존재가 필요조차 한 것입니까?

 

코로나는 이제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한번도 의문을 갖지 않던 교회 생활과 신앙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4.

인류의 역사에 크게 흑사병이 돈 것이 모두 세번입니다.

그 중에서 1347년에는 유럽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2,500만명이 죽었습니다.

 

그때 교회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때는 교황이 왕들을 임명하거나 인준하던 시대였는데, 막상 세명 중에 한 명이 죽어갈 때,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속수무책이었던 겁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병은 퍼져 나갔습니다.

 

결국 교회는 권위를 잃고, 교회가 제시하던 영적인 가치는 빛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은 창조주보다 피조물의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그래서 흑사병이 휩쓸고 난 한 세기 후에는 르네상스가 일어났고, 또 한 세기 후에는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교회는 무엇을 잃었습니까?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렸을 뿐입니다. 허물 것을 허물었을 뿐입니다.

 

그때도 격리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격리를 영어로 Qua’rantine이라고 하는데 그 말에는 40이란 뜻이 들어있습니다.

격리 기간이 40일이었기 때문에, 회개와 보속의 사순절과 한 줄 위에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 사순절을 겪었기에 흑사병과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통해서 교회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었을 겁니다.

 

5.

또 다시 격리 시대입니다. 또 다시 시대가 요청하는 사순절입니다.

이제 교회가 변해야 한다면, 그것은 버릴 것을 버리고 허물 것을 허무는 것입니다.

 

주일미사의 의무에 변할 것이 무엇입니까?

코로나 이전이나 지금이나, 아파서 못 나오거나, 아플까 봐 못 나오거나, 몸이 묶여서 못 나오거나, 못 나오는 걸 누가 뭐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주일 미사에 나올 수 있는 데에도 안 나오는 것이 문제였을 뿐입니다.

 

주일미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요일에 부활을 믿는 신자들이 모여서, 부활을 기념하고 경축하면서, 그 부활에 참여하고자,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전대사는 코로나 전에도 코로나 중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전대사는 언제나 용서하시는 하느님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확인하고 감사드리는 축제이고, 개별 고백성사는 나와 하느님과 따로따로 만나는 특권의  성사입니다. 유명 가수의 노래를 라디오를 통해서 들어도 노래는 영혼을 울립니다. 직접 콘서트 장을 찾아가서 멀리서 가수를 바라보며 청중의 하나가 되어 노래를 들으면 감동은 휠씬 더 큽니다. 그 가수가 나를 개별적으로 찾아와서 친교를 나누고 나만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면 그 감동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주일미사와 고해성사는 변할 수 있는 율법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사랑의 계명이고, 의무가 아니라 특권입니다.

 

그걸 의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버릴 것이고, 그것이 짐이라고 여겨졌다면, 그것이 바로 허물 것입니다.

 

주일학교 교육이 과연 문제가 되기나 합니까?

주일학교 교육의 문제는 코로나가 아닙니다. 주일학교 교육의 문제는 코로나 이전부터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느라 성당에 보내지 않는 데 있었습니다.

전국의 모든 학년이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데도, 주일학교 미사나 교리 수업을 온라인으로 하자는 요청은 단 한 건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교회의 권위가 흔들릴 것입니까? 요즘의 교회가 언제 권위를 가졌습니까?

 

6.

TV 화면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영상 미사를 통해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에 성령께서 내리신다면 무엇이 더 문제이겠습니까?

 

초대교회가 소공동체로 시작했고, 박해시대를 이겨낸 교회의 모습이 바로 소공동체였지만, 이제 코로나 시대에 소공동체 모임과 단체의 회합없이 사도행전의 말씀처럼 “우리 고을에 큰 기쁨이 넘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에 지각의 변동은 일어날 것이지만, 그 변동이 피상적이고 부차적인 표면의 변화에 머무른다면,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약속하신 바,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새롭게 태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기회에 진정 세상의 가치와 잘못된 신앙의 습관에서 격리되어서 우리 신앙의 진원지인 영혼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은 진정 부활하셔서 내 안에 계십니까?

세상은 그분을 보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보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분께 바라는 만큼, 우리는 그분을 사랑합니까?

 

7.

올해가 A.D. 몇 년입니까?

A.D. After Disease, 병이 돌고 나서 첫해입니까? 아니면,

A.D. Anno Domini, 주님께서 세상에 오시고 나서 2020년입니까?

 

그 전에도 인류에게 역병은 돌았고, 전쟁도 있었고, 종살이와 탈출도 있었고, 유배와 귀환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그때마다 생각이 바뀌었고, 그때마다 생활도 변했습니다.

 

그러나 역법이 바뀐 적은 단 한번 뿐입니다.

 

우리는 역법이 바뀌기 전, 구약의 시대에서 율법을 살고 있습니까?

올해 사목 표어대로, “허물고” (요한 2, 19), 버리고, 변하면서 주님의 해를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