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반포성당 교우들께] 반포성당 교우들께 드립니다

1.

오늘은 서기 374년, 당시 예비 신자였던 암브로시오 성인께서 세례, 견진, 부제품, 사제품, 주교품을 차례로 받고 밀라노의 주교로 착좌한 날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성인이 갓난아기였을 때, 벌들이 모여와 얼굴을 온통 덮었지만, 아기가 벌을 쫓으려고 하지 않았고, 벌들도 침 한방 없이, 한 방울의 꿀을 남기고 떠났다고 합니다. 후에 성인은 꿀처럼 설교하는 교회학자가 되시어 성 아우구스티노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과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암브로시오 성인은 양봉과 꿀초, 곧 밀랍초의 수호성인입니다.

 

오늘 새벽 미사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성당의 제대에는 촛불을 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내일은 한국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대축일]이거늘, 하필 이날부터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기 때문입니다. 미사에 모일 수 있는 인원이 20명뿐이니, 사실상 신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는 봉헌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일단, 반포성당의 모든 미사와 성사는12월8일부터 중단됩니다.

12월19일~20일로 예정되었던 성탄 준비 판공 고해성사도 취소합니다.

 

앞으로 3주간, 12월28일까지 시행되는 거리두기 2.5 단계 조치이니까, 저무는 해에는 지난 봄 부활대축일에 이어 성탄대축일 미사도 신자들과 함께 봉헌하지 못합니다. 암브로시오 성인께서도, 주교 되신 후 오늘까지 1,636년 동안, 처음 겪는 기이한 해가 될 것입니다.

 

사제는 반포성당을 지킵니다. 면담을 원하시면, 사무실 (532 3333)에 전화번호를 남기시거나 [email protected]으로 알려주십시오. 부득이한 경우라면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면담합니다.

 

3.

사무실은 계속 문을 엽니다. 우선 아래와 같이 현행 시간대로 문을 열되, 텅 빈 성당을 지키는 것이 무의미할 수 있으니, 사목협의회와 의논하여, 업무 시간을 임시로 조정하게 되면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휴무
화~금 09:00 ~ 15:00
13:30 ~ 19:30
주일 06:40 ~ 19:40

 

미사는 당분간 사제들과 수도자와 신학생들이 모여 봉헌합니다. 같은 시간에 교우들도 한마음으로 기도하시도록 저희가 미사를 봉헌하는 시간을 다시 알리겠습니다.

 

사제들은 교우들이 청하신 지향대로 미사를 봉헌합니다. 납부하신 미사 예물은 이미 전액 교구청으로 보냈습니다. 다시 성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재개할 때까지, 미사 지향을 접수하지만, 미사 예물은 없습니다. 미사에 함께 하지 못하므로, 지향대로 미사를 봉헌하였다는 확인 문자를 발송하겠습니다.

 

5.

반포성당 2021년 달력은 12월 19일~20일 주말에 나누어 드립니다. 자세한 계획을 다시 알리겠습니다.

 

어제 대림2주일의 강론 중에 저는 이런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허물어지려면 철저히 허물어집시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사흘 안에 다시 지으십니다.”

 

오늘 대림2주간 월요일, 매일미사 독서 중에 이사야 서의 첫 단어도 광야입니다. 광야는 새 하늘 새 땅을 만나는 곳입니다. 광야는 하느님께서 시련의 모습으로 주시는 은총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광야에서 터지는 물을 보고, 사막에서, 흐르는 냇물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머지않아, 오늘을 돌이켜 보며, “그때 그랬었지,” 하고 웃으며 회상할 것입니다.

 

요르단 강은 세례의 강입니다. 요르단은 구비구비 빙빙 돌아 흐른다는 뜻입니다. 인생의 우여곡절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곧장 오십니다. 우리가 쓰는 공책의 선은 구부러졌어도, 하느님께서는 그 위에 당신 사랑을 곧게 쓰십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오늘 복음에 나옵니다. 중풍으로 평상에 누운 환자를 들어주는 사랑이고, 환자와 함께 예수님께 다가가려는 믿음입니다. 성당 문이 닫혔을 때, 서로를 위해 기도하면 마음은 더 따뜻해지고, 영혼은 더 가까워집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성당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성당 지붕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거기에 베드로의 닭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보시고, 무어라 하시겠습니까?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그 말씀을 서로에게 전하며 격려합시다.

 

우리 성당은 철저히 방역을 지켰고 열심히 봉사했습니다.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행여나, 세상은 우리만큼 하지 못하여 이 꼴이 되었다고 책임을 돌린다면 우리 봉사의 빛이 바랩니다. 어차피 세상의 죄를 우리 십자가로 지고 가는 게 성당의 본분이며, 사회의 문제는 교회의 책임입니다. 우리 사회와 세상을 위해 기도합시다. 코로나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건강, 사업, 직장, 가정, 학업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 그리고 분투하는 의료진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합시다.

 

이번 토요일과 다음 토요일, 우리 본당 교우 두 쌍의 혼배미사가 연기되었습니다. 얼마나 난감하겠습니까? 이 신랑 신부들이 이런 어려움을 통해,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축복의 기도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복음 말씀대로, 우리는 이럴 때 신기한 일을 보여줄 수 있고, 누워있던 평상을 들고 일어나 집으로 가며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성탄은 마구간에서 초라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거리두기가 있었는지, 그 고요한 밤에 아기 예수님 앞에 모인 사람은 스무 명이 안 됐습니다. 그러나 하늘에는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서, 거룩한 밤이 되었습니다.

이번 성탄, 쓸쓸하고 외로운 반포성당이야 말로, 이렇게 외칠 곳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성 암브로시오!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한국의 모든 순교자!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주임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