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반포성당 교우들께] 그리스도 왕 반포성당 교우께 드립니다

그리스도 왕 반포성당 교우께 드립니다.

1.

이태리가 어떻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에 시달리고 있는지 뉴스를 통해 들으셨을 압니다. 나라 전체가 봉쇄되고 외출을 자제합니다.

지난 주일은 사순 3주일이었습니다. 오후 4시에, 어느 분이 바티칸을 나와 로마의 [마리아 대성당]에 들렸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입니다. 마리아 대성당은 그분이 교황으로 선출되어 베드로 광장에서 교우들에게 먼저 기도를 부탁하시며 인사를 나누신 후 처음 들리셨던 성당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로마 백성의 구원 성모상]이 있습니다. 교황께서는 무릎을 꿇으시고 간곡히 기도하셨습니다.

 

이어서 찾으신 곳이 로마의 중심에 있는 [성 마르첼로 교황] 성당입니다. 1519년 3월 23일 저녁, 큰불이 이 성당을 삼켰지만, 다음 날 아침, 잿더미 속에서, 이 성당을 지키던 나무 십자가가 그을림 하나 없이 발견되었습니다. 십자가를 비추던 작은 기름 등잔도 옆에서 불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3년 후1522년, 유럽 전체에 흑사병이 돌 때에, 로마 시민들은 이 십자가를 모시고 8월 4일부터 20일까지, 시가를 행렬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인구의 1/3을 앗아간 전염병의 재앙을 로마가 피해갈 수 있었다고 해서, 이 십자가는 [기적의 십자가]로 불립니다. 그후로 [희년]이 선포될 때마다, 역대 교황들의 이름과 희년 연도를 이 십자가 뒤에 새겨져 있습니다. [서기 2000년 희년] 축제의 절정을 이룬 [용서의 날]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당시 교황께서도 이 십자가를 품에 안고 기도하셨습니다. 지난 주일 늦은 오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이 십자가 앞에 다시 무릎을 꿇으셨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의 빠른 종식과 환우들의 치유와 목숨을 잃은 분들의 영혼을 위해 간곡히 기도하셨습니다.

 

2.

무릎을 꿇고 간곡히 기도하시는 분이 교황님 뿐이겠습니까?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께서는, 3월 20일, 미사 중단을 연장하는 가슴 아픈 소식을 전하는 세번째 담화문을 내셨습니다. 함께 보내 드리는 그분의 글에는 하루 빨리 교우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싶은 애타는 염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가오는 부활 축제를 준비하는 성주간에 대한 사목과 전례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을 주셨습니다.

 

또한 3월 25일부터 함께 9일간 묵주기도를 바치자고 하십니다. 이날은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성령으로 잉태하셨도다,’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코로나 19로 고통받고 있는 분들에게는 치유의 은총을, 의료진에게는 힘과 용기를 주시도록, 우리의 위로자이신 성모님의 전구와 함께 주님의 은총을 청하자고 하십니다.

 

이 9일기도를 바치는 곳은 ‘각자의 자리’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심으신 그 자리에서, 함께 기도의 꽃을 피우는 겁니다. 성전이 닫혀 있어서 성전이 넓어집니다. 기도하는 곳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염수정 추기경께서는 특히 취약계층의 이웃에게 관심과 도움을 드리며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시련은 은총의 다른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비추시고 부추기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봄을 지내는 이웃을 마음에 보듬을 수 없습니다. 반포성당은 삼양동 선교본당과 금호동 선교본당에 작은 정성을 보냅니다. 이런 취지를 마음에 담고 9일간 묵주기도를 바치시고, 혹시나 이 나눔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성당 사무실에 들리시면 됩니다.

 

9일기도를 시작하는 3월 25일은 또한 미사를 중단한 지 한달이 되는 날입니다. 이렇게 멈추고 나서야, 우리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고맙고 아름답고 넘치는 은총이었는지 깨닫습니다. 깨달음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이번 사순절은 함께 구원의 신비를 거행하지 못하고, 모여서 기도하지 못해도 그래서 오히려 더 깊은 회개의 계절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시대의 징표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런 체험과 영감을 모은 책이 성서입니다. 전세계가 함께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봄을 지나며 우리는 어떻게 하느님의 뜻을 읽고 움직이는 지 우리의 일기가 성서의 한 구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버려야할 것이 초조함입니다. 미사 중, 주기도문에 이어지는 사제의 기도에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ET AB OMNI PERTURBATIONE SECURI..라는 라틴어의 번역입니다. 우리 말로 시련이라고 옮겨진 이 말은 불안, 초조, 동요, 혼란, 소동, 무질서, 악천후 등을 뜻합니다.

언제 다시 교우들과 함께 모여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을 지 모릅니다. 성주간이 다가 오고, 부활대축일이 멀지 않았지만, 전례적 필요성이 미사 재개의 시간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종교 집회가 재앙을 키우는 요인이 되었기에, 다시 미사를 봉헌하려면, 사태의 종식이 공식적으로 선언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염원보다 더 오래 미사를 못 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 모여 성대한 구원의 신비를 거행하더라도, 이번 사태의 여파는 남을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신앙 생활의 리듬을 흔들었으니, 이전과 같은 열성과 규모를 회복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리라 봅니다. 반포본당 공동체의 사목과 전교, 교육, 성전재건축 등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입니다. 초조하면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불안, 초조, 동요, 혼란, 소동, 무질서, 정신적 악천후 속에서 평정심을 갖고 하느님께 맡기는 것이 미사의 영성입니다. 한국교회는 박해도 겪었고, 전쟁도 치뤘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 놓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8, 31-35)”

 

4.

실은 언제 미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를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지, 어떻게 [교회적 마음 두기]를 실천하는 데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백성의 구원 성모상]과 [기적의 십자가]는 우리 반포성당 교우들의 마음에 있습니다. 교황님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교구장님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30초라도 손을 모아 기도하고 30초 동안 손을 씻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신천지 탓이 아니라 “제 탓이오”입니다. 마스크를 쓰면서 이웃을 배려하고, 내면을 바라봅니다. 코로나19 사태는 교우들이 신앙이 주는 평정을 증거하고, 사랑과 위안과 희망이 들어있는 말씀 한 마디 건네고, 작은 나눔과 희생을 실천하라는 소명입니다. 모든 것이 멈추는 죽음을 묵상하면 부활 축제는 이미 우리에게 시작됩니다. 기적은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알려드린 대로, 반포성당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매일 오전 11시에 미사를 봉헌합니다. 교우들의 미사 지향도 받습니다. 본당 사무실에서는 미사 예물 없이 미사 지향을 전화 532 3333으로도 받으며, 미사 지향을 공지하고, 매일 미사가 끝나면 미사 지향을 청하신 분들께 문자로 알려드리고 있습니다. 또한 전화로 신앙과 생활 상담을 원하는 분들은 사무실 532 3333에 연락처를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이럴 때 우리는 더 가까워집니다.    

 

4월 11일 밤 부활성야 축제를 거행할 수 있으면 무척 ‘기뻐 용약’할 것입니다.

그 밤에 세례성사를 받으려고 준비하던 예비 신자들께서도 그러실 것입니다. 예비신자들과 전화로 면담을 이어가겠습니다. 만에 하나, 그날 부활 축제를 지내지 못하게 되면, 부활성야부터 다음 날 부활대축일까지 예비 신자들을 한 분씩 대부모와 초대하여 세례성사를 드리려고 사제들이 의논하고 있습니다.

 

요즘 성당에 인적이 드물어 보안과 관리와 위생에 더 마음이 쓰입니다. 평소보다 열심히 일하시는 관리장 님, 관리인 님, 미화원 님, 그리고 사무원들께 감사와 격려를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반포성당 교우들 옆에 있습니다. 전화 한 통, 이메일 한 통의 거리일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반포성당 사제단, 수도자, 총회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