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제16주일 – 가라지의 비유
지난 늦봄에 화단을 새로 정리하며 꽃잔디와 화초를 예쁘게 심었습니 다. 한 달 남짓 지나자 심지도 않은 잡초들이 화초보다 훨씬 많고 싱싱 하게 자라고 있기에 날을 잡아 잡초 제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특히 요 즘처럼 비가 자주 오는 여름에는 잡초를 잠시만 내버려두어도 화단을 뒤덮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잡초는 눈에 보이는 대로 뽑아내는 것이 맞다 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밭 농사를 잘 지으려면 어린 곡식이 일부 손상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잡초를 무조건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곡식과 잡초, 다시말해 밀과 가라지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밀은 자라서 사람의 양식으로 이용 되지만 가라지는 단지 사람들의 양식이 되지 못한다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어제까지 쓸모없다고 버렸던 잡초의 효능이 밝혀 져서 약초로서 귀한 대접을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알면 약초요 모르면 잡초다’하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마태오 복음 21장 42절에 도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 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태 21,42)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더이상 선과 악으로 나누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다름의 차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때때로 우리와 다르다거나, 필요성의 이유로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여 이를 근절하려던 시도 자체가 사실상 더큰 악이 되었던일이 많습니다.쓸모없는인종청소 명목을 위한 홀로코스트의 가스실이 그랬고, 어떤 시대이건 있었던 마녀사냥이 그랬습니다. 가깝게는 삼청교육대 같은 ‘인간 개조 교육’의 경우 등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가라지를 제거의 대상으로만 보거나, 가라지를 개량해서 자신에게 맞는 밀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밀과 가라지는 서로 다른 나름의 존재성을 가지고 함께 공존해야 하는 것이기에, 예수님께서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13,30)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선과 악의 구별은 오직 하느님께만 유보되어 있고 그분께서 추수 때에 결정하실 일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보여지는 부분만이 아니라 그의 내면을 보심으로써 악인으로 단죄받은 세관장 자캐오에게서 관대함을 끄집어내셨고, 막달라 마리아의 부정한 삶 속에서도 신앙의 큰 사랑을 드러내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 속에도 선뿐만 아니라 악도 있다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사는 것 이외에 내세울 것은 별로 없을 것 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당신 자신을 선하다고 하지 않으셨는데 (루카 18,19) 하물며 우리가 어떤 선의 잣대로 대상을 악으로 규정하여 단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 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마 태 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