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대축일
언젠가 석가모니를 화장(다비)했던 자리에서 석가모니 유해가 발견되 었다해서 인도를 위시한 불교 국가에서는 한동안 떠들썩하게 축제를 열었던 적이 있습니다. 발굴된 석가의 유해들 모시고 시가 행렬을 했고, 수많은 사람은 유해가 지나갈 때 땅에 엎드려 절하며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정말로 부처님은 실재로 계셨다는 믿음’을 더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 무덤에서도 예수님 뼛조각이 하나라도 발견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 예수님이 실재로 계셨다고 좋아했을까요? 아니지요. 당연히 그리스도교는 이미 산산조각이 났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복음에서도 이 빈 무덤이야말로 예수님 부활의 완벽 한 증거가 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덤이 비어있으니 까 예수께서 당연히 부활하신 것이라는 이 논리는 어쩌면 우리 교회 신앙의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빈 무덤 소식을 들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이 소식을 전한 막달라 마리아 마저도 빈 무덤 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으로 보지 못하고 단지 누군가 주님의 시신을 가져갔다며 걱정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빈 무덤을 보고서도 부활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 그리고 그 후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다고 여러사람들이 증언하는데도 절대로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무슨 이유인지 는 몰라도 갑자기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그 부활을 증거하다가 그 때문에 죽어갔다면 분명히 그들에게 부활을 믿게 한 엄청난 증거가 있었음이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 부활에 대한 완벽한 증거가 어떤 것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부활에 대한 완전한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증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주관적인 체험으로써 그 부활의 증거를 수용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빈 무덤에서 우리가 주님을 새롭게 만남으로 부활 믿음이 시작되고, 그 빈 무덤에서 우리 이름을 불러주실 때 부활을 깨닫게 되며, 예수님께서 쪼개어 주시는 빵을 나누어 먹을 때 그 부활의 진실을 깨닫게 되는 부활 신비의 출발점이 바로 빈 무덤이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많은 사람이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의 삶을 보고 주님의 부활 을 믿게 되었고, 사도들의 치유 기적을 통해서 주님을 만났으며, 사도들의 전교를 통해서 주님의 부활을 체험했다면, 이 세상은 또다른 부 활 체험을 통해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빈 무덤 대신에 내가 주님 부활의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내 변화된 삶이, 세상으로 하여금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바닥과 옆구리를 만져보고 믿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만일 주님의 부활로도 내가 변하지 않고, 내가 그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 빈무덤은 단지 빈무덤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객관적인 증거로서의 빈 무덤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객관적인 증거나 목격으로 누구나 증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성령 안에 변화된 새 삶을 살아야 그 부활을 증언할 수 있고, 예수님의 부활로 변화된 모습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주님 부활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빈 무덤으로 부활을 증거하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부활의 증거가 되고 부활의 믿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빈 무덤도 또다른 절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