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4주일 -요셉의 믿음-

찬미 예수님…
오늘은 대림 제 4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바로 요셉입니다. 그런데 이 요셉이라는 이름은 성탄절이나 되어야 한번 복음에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드라마의 배역으로 보면 ‘지나가는 사람 2’ 정도에 불과한 인물로 그 흔한 대사 한마디도 없는 엑스트라입니다. 그럼에도 이 요셉이 빠지면 성경 전체가 무의미해 질 정도로 요셉의 역할은 대단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하느님께 순명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예수님을 통한 세상의 구원사업이 가능하게 만든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주인이 되어라. 역사에 끌려다니지 말고 역사를 주도하는 사람이 되어라.” 말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역사를 끌고가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해 토인비는 “시대마다 특별하게 하느님이 사용하신 사람이있다.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명감을 가지고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이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지면 많은 열매를 맺고 썩지 아니하면 밀알 그대로 있는 것 처럼 하느님의 말씀에 희생하는 사람이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이 된다.” 다시 말해 나는 죽고 그래서 예수가 나타나는 사람이 바로 그런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말인데, 바로 요셉이 그런 사람입니다.

오늘의 복음을 보면,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 모르게 파혼 하기로 작정하였다.>

여기서 ‘남모르게’ 한다는 것은 마리아에 대한 배려이고, 한 인간에 대한 배려이며, 그 이전에 사랑했던 한 여인에 대한 남자로서의 배려라고 보여집니다. 어쩌면 이런 배려는 율법보다 강한 사랑의 표현이며 인간의 본성을 죽임으로서 그 본성에서 해방된 새로운 의미의 의로움이고, 사회적인 정의를 넘어서는 복음적 공정(公正)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적 정의가 있습니다. 그 안에는 개인적인 신념과 상식이 있고,우리는 대부분 그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드물게 하느님의 역사하심은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복음적 정의를 요구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도무지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더라도 그것을 율법적으로 낱낱이 밝히기 보다는 사랑과 배려로 덮고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는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은 우리의 본성상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기에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요셉의 사랑과 배려 그리고 그것을 기초한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무조건 순명의 자세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요셉의 신앙적 태도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 2독서인 로마서에서 ‘믿음의 순종’(로마 1,5)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하자 요셉은 인간적으로 절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앞에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말씀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의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적 자세가 바로 ‘믿음의 순종’이 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순종’은 내 뜻보다 우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 뜻에 온전히 순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자기의 생각이나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선하신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을 믿고 그 분의 뜻에 자기의 생각과 말과 행동과 욕망을 의탁하고 봉헌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림절은 신앙의 순종을 실천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은총의 삶을 살수있는 시기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것을먼저 생각하고 그 뜻을 일상에서 실천한 요셉을 본받는 모습으로 성탄을 잘 준비하여 은혜 충만하게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