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준 아우구스티노 주임신부님 영명축일 축하식

8월의 마지막 주일인 28일은, 늦여름과 초가을 두 계절의 이중주처럼, 반포성당에 있어서도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한 날입니다. 이날은 고석준 아우구스티노 주임신부님의 영명축일로서 그동안 축일에 맞춰 작정하고 피정을 가셨기 때문에 실로 3년 만에 축하식을 갖는 기쁜 날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서울대교구 사제 인사이동으로 사목 일선에서 은퇴하며 본당에서 마지막으로 교중미사를 집전하시는 헤어짐의 슬픈 날이기도 합니다.

 

아파트 재건축으로 타 지역에 나가 계신 교우님들도 고신부님의 영명축일을 축하하고 새로운 은총의 여정을 축원하기 위해 임시성당 미사에 많이 오셨습니다. 고석준 신부님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오신 손님 신부님 네 분도 함께하셨습니다.

왼쪽부터 유지인 야고보 아들 신부님, 박유민 세례자요한 보좌신부님, 고석준 아우구스티노 주임신부님, 김성만 안드레아 양원성당 주임신부님, 박태민 베드로 아들 신부님, 태철민 엘제아리오 신부님

주임신부님은 강론을 통해 복음 말씀을 바탕으로 본당 교우들에게 남기고 싶은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수호성인과 함께 삶과 일을 다짐해 왔고, 늘 떠날 생각을 하며 머물고자 했습니다. 그래야 더 충실히 떠날 수 있으니까요.

돌이켜보니 게으름, 낭비, 방종한 시간이 먼지처럼 묻어 있습니다. 오히려 이사는 기도요 축복입니다. 떠남은 머무름의 끝이자 시작입니다. 만나게 해 주신 하느님의 섭리에 감사합니다.

 

노산 이은상은 27살에 ‘성불사의 밤’을 작시했습니다. 2절은 “댕그렁 울릴제면 더 울릴까 맘졸이고, 끊일젠 또 들리니 소리나기 기다려져, 새도록 풍경소리 더리고 잠 못이뤄 하노라.”입니다.

‘울림’과 ‘들림’을 마음과 삶 속에 두고 있으면 불면할 뿐, 영면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혼자 울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은총이요 종교의 목적입니다. 기도는 듣고 계시는 분이 있으므로 저절로, 성령의 바람 따라 울리는 것입니다.

 

평생 사제직을 수행하며 지녀온 바람이 있습니다. 미시 시작 시 개개인의 미사 지향을 발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인류 구원,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걸 보기 어려웠습니다. 기도 지향이 개인적으로 축소돼 안타깝습니다.

오늘이 반포성당에서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어린이 한 분에게 세례를 드립니다. 반포성당에서 세례의 샘이 콸콸 쏟아지기를 바랍니다. 나머지 걱정은 부질없는 조바심일 뿐입니다.

 

은퇴미사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이후 남는 게 장례미사 뿐이기 때문입니다(웃음). 오늘 많이 오셨으니 장례미사에도 오시길 바랍니다. 이승에서 이사 나가기 전, 이제부터는 기도를 일로 생각하고 열심히 할 것입니다. 만남을 생각하며 한 분 한 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사목협의회 곽병호 다니엘 총무님의 진행으로 간단한 영명축일 축하식이 진행되었습니다. 꽃다발은 반포성당 여성 교우들 중 가장 연세가 많으신 나희균 크리스티나 화백님이 “신부님, 사랑해요”라는 고백과 함께 전달하셨습니다. 교우들이 한 달간 정성스레 모은 영적 예물 카드는 양인원 율리아나 님이 전해 드렸습니다.

시간 관계상 짤막하게 낭독된 이준영 알베르토 총회장님의 축사에 이어, 양원성당의 김성만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축일 축하 인사와 함께 양원성당을 신축할 당시 고신부님께서 보여주신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고석준 신부님께서는 반포성당을 위해 꿈속에서라도 기도를 하실 것입니다. 성당 재건축은 하느님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으시되,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첫 삽을 뜨십시오.

고신부님, 건강 챙기시고 기쁘게 노후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축가로 이은상 작시, 홍난파 작곡의 ‘성불사의 밤’ 1절을 독창과 합창으로 두 번 불러 드렸습니다. 독창은 베를린 국립오페라단 소속 테너 김경호 요셉 님이 하셨습니다. 32년 전, 고석준 신부님께서 포이동성당 주임신부로 봉직할 때 복사를 했던 소년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어 신부님을 축하하기 위해 반포성당을 방문한 겁니다.

두 번째는 모든 교우들이 큰 소리로 합창을 했습니다. 제 귀에는 고신부님을 위한 화살기도로 들렸습니다. 뭉클한 순간이고,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테너 김경호 요셉 님, 뒤로 오르간 연주자 강다영 크레센시아 님, 오른쪽 오보에 연주자 이병기 예로니모 님

미사 후 임시성당 입구 복도에서 교우들과 한 분씩 작별 인사를 나누셨습니다. 줄이 얼마나 길었는지 인사에만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습니다. 편지와 사랑과 축복의 마음 외에는 그 어떤 선물도 받지 않고 사양하셔서 준비해온 선물을 도로 가져가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영명축일 축하 떡을 교우님들과 나누었습니다.

 

1985년 8월 17일 사제 수품 이후 지금까지 37년간 사제의 길을 오롯이 올곧게 지켜오신 고석준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일부러 짜 맞춘 것처럼 2018년 8월 28일 아우구스티노 축일에 부임하셔서 꼭 4년이 지난 2022년 같은 날에 마지막 주일 미사를 하고 떠나시니, 신부님은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 반포성당을 위해 보내 주신 선물이셨음에 틀림 없습니다.

 

신부님께서 성전 재건축을 비롯해 우리 본당과 교우들을 위해 그간 얼마나 많은 노력과 큰 희생을 하셨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흔적들이 부족하나마 누리집 곳곳에 담겨 있기에 굳이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더 솔직히, 과문한 탓에 말과 글이 모자랄까 염려돼 그렇습니다.

 

고석준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신부님들의 마지막 본당은 천국에 드실 때까지 끊어지지 않는 관계라고 들었습니다. 헤어짐의 순간이 곧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작임을 신부님으로부터 배웠으니 이제 신부님과 반포성당은 하늘을 향해 함께 나아감도 압니다. 기쁘지만 슬프고, 슬프지만 또 기쁜 마음으로 신부님을 보내 드립니다. 신부님께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바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