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건립위원회‚ 인보성체수도회 성미술연구소장 김영자 안셀모 수녀님 방문

폭염경보가 발효 중이던 7월 마지막 토요일(30일) 오후 2시, 지글지글 끓는 성당 마당에 용감한 형제, 자매들이 모였습니다. 로만 칼라를 하고 나선 고석준 아우구스티노 주임신부님, 성전건립위원회 위원장님(이봉영 엘피디오)을 비롯한 위원 11명, 새 성전 설계사인 공간건축 이상림 알렉산더 대표님과 조영원 실장님이 이날의 용사들입니다. 인보성체수도회 성미술연구소장 김영자 안셀모 수녀님을 뵈러 가는 길입니다. 7월 14일(목)에 수녀님을 먼저 만나신 주임신부님께서 성전건립위원회에 수녀님 작품들을 통해 교회 성미술 전반을 간략하게나마 배울 것을 권유해 이뤄진 행사입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수녀원과 마주하고 있는 성체유치원 건물 벽화도 김영자 수녀님 작품입니다.

마침 유치원 방학이라 마당에 주차를 하고, 먼저 수녀원 성전에 들러 하느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춤추며 주님 앞에 나가리라.” 성전 앞 벽면에 설치된 춤추는 모습의 예수님도 김영자 수녀님 작품입니다.
성체 조배 중인 반포성당 성전건립위원회 여러분

김영자 안셀모 작가님 작품의 산실이자 한국 천주교회 성미술 연구의 요람 중 한 곳인 인보성체수도회 성미술연구소! 수녀님께서는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으시며 시원한 차와 냉커피, 맛있는 과자 등으로 더위를 식혀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섭리와 이끄심으로 오늘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말씀과 함께 설명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진열장 한쪽에 놓인 감사패와 젊은 시절의 수녀님 사진 액자

A4 한 장에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힌 이력과 작품 목록을 보자마자 규모는 물론 유리화, 성모상, 각종 성물 제작과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영역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수녀님의 전방위적 활동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뿐, 크고 두꺼운 작품집 2권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여주시는 방대한 작품 세계와 그 안에 박힌 깊은 영성을 접하고는 더 이상의 감탄사가 불필요하다고 느낄 정도가 되었습니다.

 

미술 분야 전반을 다룰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아버님께서 큰 옹기 공장을 하셨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흙을 만지며 놀았고 교사 경험도 있으신 데다, 무엇보다 딸처럼 아끼고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면서 “한 분야에만 집중하는 것보단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소재를 접하고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신 은사 봉상균 교수님(그래픽디자이너이자 화가, 봉준호 영화감독 부친)의 큰 가르침이 있었다고 합니다. 모든 학문 영역이 그렇듯 미술과 디자인도 학제간 접근(學際間 , interdisciplinary approach)을 통해야 더 폭발적인 시너지가 생기는가 봅니다.

왼쪽부터 고석준 아우구스티노 주임신부님, 공간건축 이상림 알렉산더 대표님, 조영원 실장님

여러 교구 본당의 총예술감독으로 일하신 경험을 들려주시면서 스토리텔링과 성미술 작업을 하나로 이어 완성한 도림동성당 사례를 언급하신 게 기억에 남습니다. 수녀님은 도림동성당 순교자관 설계와 성미술 작품 일체를 제작하셨습니다.

 

 이현종 야고보 신부님(1922-1950)은 1950년 4월 사제 서품을 받고 도림동본당 보좌신부로 임명되었으나 한국 전쟁 중 서봉구 마리노 형제와 함께 인민군에게 총살 당했습니다. 도림동성당 성당지기이며 복사였던 서봉구 마리노 형제님(1926-1950)은 피난을 가라는 이현종 신부님과 주위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성당에 남아 신부님을 보필하다 뒤이어 총살 당했습니다.

 

“성당의 역사성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작품을 구상해야 한다”는 말씀대로, 두 분의 순교 이야기가 설계 및 인테리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많은 노력을 하신 수녀님 덕분에 도림동성당의 순교 기념관이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면서 신자들로하여금 주님 앞에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도림동성당의 성미술 작업을 설명하시는 수녀님

2시간에 걸친 설명회 동안 특별히 강조하신 말씀은 성미술 작품은 교우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며, 시대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적 이미지를 신앙 안에서 풀어내고, 작품마다 그에 맞는 상징을 넣는 수녀님의 작업 방식도 이러한 의식이 자연스레 투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성당은 서로 어우러져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교우들이 기쁠 때나 힘들 때 한 번 더 찾는 공간,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성미술과 인테리어의 주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행을 좇아서도, 시대에 뒤쳐져서도 안 됩니다. 시대를 초월해야 합니다.

작품집 외에도 갖고 계신 자료들을 폭넓게 보여 주시면서 교회 미술 전반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정교한 유리화 밑그림, 대성전 문과 손잡이 같은 나무와 돌을 소재로 한 조각 등 좀처럼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귀한 실물들을 직접 만지고 감상하도록 기꺼이 허락하셨습니다.

성미술연구소에 유난히 저의 눈길을 끄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창 앞에 걸린 유리화 소품들입니다. 우리 본당 옛 성전의 남용우 마리아님 유리화, 신축 성당 순례 나들이에서 만난 양원성당의 넓은 유리화 벽, 국내 성지순례 중에 본 솔뫼성지와 갈매못성지 성당의 유리화, 여기에 수녀님 작품까지 접하면서 마음속에 소망 하나를 품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집의 실내 유리창 한 면에 유리화를 설치하고 싶습니다. 한 쪽 창 전체가 어렵다면 일부분에라도요. 과연 그 꿈이 이뤄질까요?

슬랩 글라스 소품

다른 분들도 슬랩 글라스(Slab Glass) 소품에 마음을 뺏기셨는지 이리저리 살펴보며 사진을 찍으셨습니다. 슬랩 글라스는 3cm 두께로 튼튼할 뿐만 아니라 유리면을 모루로 깨면 면마다 각기 다른 각도로 빛이 산란돼 빛과 빛이 서로 부딪히면서 휘황찬란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고 합니다. 독일제 슬랩 글라스를 세계 최고로 치는데, 값이 일반 앤티크 글라스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싸다고 합니다. 아주 높은 천창의 슬랩 글라스가 반포성당 새 성전에 설치돼 빛의 통로로서 하늘의 광채를 성전 가득히 쏟아내면 얼마나 근사할지 상상만 해도 심장이 막 뜁니다.

김영자 안셀모 수녀님과 본당 사목협의희 이원규 베드로 시설분과장님

김영자 안셀모 수녀님과의 만남을 통해 작품마다 서려 있는 하느님의 현존과 이끄심, 수녀님의 순명과 열정을 가슴 벅차게 느꼈습니다. 교회 성미술 본연의 역할은 무엇인지, 성미술과 교회 건축과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돼야 바람직한지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진 것도 유익했습니다. 주임신부님께서는 “압도당했다”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참석자 모두 공감했습니다.

 

아울러 뜻밖의 수확으로 우리 본당 마당의 나무 의자, 탁자와 차양 설치를 김영자 수녀님께서 제안하고 디자인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당 제9대 주임사제이신 송우석 프란치스코 신부님께서 사목하셨던 2017년의 일로 수녀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김 안셀모 수녀님과 반포성당의 인연은 생각보다 길고 깊었습니다.

 

이날 바깥 기온은 섭씨 36도였으나, 아름다운 성전 재건축을 꿈꾸며 함께한 반포성당 방문단의 열기는 그보다 훨씬 뜨거웠습니다. 새 성전 건축은 물론 그에 걸맞는 성미술품 배치와 인테리어가 완성돼 반포성당이 곧 천상 교회임을 만끽하는 날, 그 아름다움의 시작이 2022년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었음을 회상하고 지나온 모든 시간들에 감사하며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바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