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성가대 지휘자 이병기 예로니모, 오르간 반주자 강다영 크레센시아 부부

지난 7월은 무척 더웠지만 첫 주일부터 우리 성당에서도 미사 중 성가 함께 부르기가 재개되어 미사 전례가 더 풍성해진 기쁜 달이었습니다. 7월의 마지막 주일인 31일 오전, 아우라성가대 지휘자 이병기 예로니모님과 교중미사 오르간 반주자 강다영 크레센시아님을 만났습니다.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두 분은 부부입니다.

부부 연주가가 들려주는 환상의 하모니 덕분에 반포성당 신자들의 귀는 주일마다 호강합니다. 특히 이날은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전 본당을 방문하신 김종호 프란치스코 신부님을 위해 파견성가 후 영화 ‘미션’의 주제곡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들려 주셔서 더 깊은 울림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교중미사 중 오보에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

 

▶ 어떤 계기로 음악을 전공하시게 됐나요?

 

 이병기님(이하 이): 부모님께서 취미로 악기를 배우면 좋겠다고 하셔서 플룻(flute)을 시작했는데, 선생님께서는 구강 구조가 오보에(oboe)나 바순(basson)에 더 맞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무작정 악기사를 가서 보니 바순은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제게 너무 커 결국 오보에를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예원학교 입학 후 어느 순간 음악이 즐겁고 친구들과 감정을 공유하며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가는 것에 기쁨을 느껴 음악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습니다.

 

강다영님(이하 강): 6살 때 피아노와 가곡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로부터 처음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이후 예술중고등학교를 거쳐 피아노 전공으로 대학을 갔으나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를 한 번 더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어머니께서 저 대신 원서를 내러 가셨는데 피아노 전공 접수처에 길게 늘어진 줄에 서기가 무서우셔서 그 자리에서 원서를 새로 써 오르간 전공으로 접수시키고 오셨습니다.

너무나 황당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새벽 미사와 중고등부 성가대 반주를 통해 오르간이 익숙했고 오르간을 제대로 배워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예상치 못한 ‘강제 전과’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주님의 이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 신앙 생활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이: 외가가 가톨릭 집안이라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신앙을 접했지만 음악을 전공하면서 연습 핑계로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모스크바로 유학을 갔는데 그곳 한인성당에서 마치 집으로 돌아온 것 같은 깊은 울림을 받고 다시 신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강: 열심이신 양가 할머님의 영향으로 부모님 모두 모태 신앙이시고 성당에서 만나 결혼하셨습니다. 부모님의 신앙을 물려 받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성당에서 신앙이 자랐던 거 같습니다.

 

▶ 두 분의 첫 만남과 결혼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 러시아 유학 후 이병기 예로니모님이 공익근무요원을 하면서 대치2동 성당에서 청년 합주단을 창단하며 지도할 때 교중미사와 혼배미사 반주를 하던 크레센시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연주하며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고 주변의 부추김도 컸습니다(웃음).

그렇게 사귀다가 독일 유학을 계획하는 반주자님을 보며 따라나서기로 결심을 하고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자르브뤼켄에서 같이 살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서로 의지하는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2017년 11월 한국오르가니스트연합회 초청 ‘바람의 하모니’ 콘서트(양평 청란교회)

 

▶ 하느님의 중매로 만나신 거네요. 같은 길을 가는 분을 만나 부부로 살아보니 어떠신가요?

 

 이: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두 음악가가 같이 있다 보니 음악회를 기획하는 게 편하기도 합니다. 귀국 후 독일에서 오르간과 오보에 연주 의뢰가 들어왔었는데 이 프로그램의 반응이 참 좋았습니다. 다시 올리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모든 게 멈춘 상황이 되어 아쉽습니다.

 

 강: 음악적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로서 서로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장점이 있지만 이것이 곧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삶의 과정도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도 각자의 개성과 배움을 내려 놓고 맞추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삶과 연주에서 합을 맞추는 과정을 함께하기에 어떤 면에서는 고되기도 하지만 상호 이해하고 협조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기쁨이 더 크므로 장단점이 조화를 잘 이루는 것 같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경우, 불협 화음이 어느 순간 아름다운 화음으로 변화될 때 느끼는 쾌감이나 안도감과 비슷한 거라고 할까요?

 

▶ 현재 하고 계신 활동들은 무엇입니까?

 

 이 : 모스크바 성당에서는 신자 수가 적은 관계로 한 사람이 여러 직책을 맡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저도 다양한 봉사를 하면서 본당 단체들의 역할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반포성당과의 인연은 1998년경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원에서 연주 봉사를 하다가 만난 백수진 벨라뎃다 자매님을 통해 글로리아전례합주단을 알게 된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로리아합주단을 모델 삼아 대치2동성당에서 합주단을 창단해 지휘자로 오랜 기간 지도하다 지금은 아우라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강: 명동성당 주일 새벽미사, 반포성당 교중미사와 아우라성가대 반주 그리고 동판교성당 청년성가대 지휘를 맡고 있습니다. 또 수원교구 성음악위원회 소속단체인 수원 가톨릭오르가니스트연합회 회장으로 2년째 봉사중입니다.

참고로 ‘오연회’는 사제 장례를 비롯한 교구의 크고 작은 행사에서 교회음악 부분을 담당하고, 오르간 정기연주회와 오르간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전문 오르가니스트들의 봉사단체입니다.

 

▶ 교회음악을 잘 아는 분으로서 반포성당 새 성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이: 반포성당의 아우라성가대, 까네레성가대, 글로리아전례합주단 같은 훌륭한 음악단체들이 코로나19와 재건축 이주 등으로 인해 활동을 제한 또는 중단할 수 밖에 없는 형편에 놓여 있습니다. 새 성전 건립 이후 음악단체들이 재건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지휘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안타깝지만, 음악이 미사의 은총을 더 풍성히 누리게 하는 데 도음이 된다는 사실을 신자분들께 알려 드리면서 반포성당 음악단체들의 명맥을 유지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합니다.

 

 이: 또 교회음악 공연을 위한 장소가 부족한 현실에서 반포성당이 중추적인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으면 합니다. 미사만 드리는 성당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행사가 펼쳐져 누구나 자연스럽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강: 제대 앞 꽃을 조화로 쓰지 않듯이, 성전 14처의 예수님을 디지털 이미지 화면으로 모시지 않듯이, 새 성전에 살아 숨 쉬는 소리의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면 좋겠습니다.

오르간은 ‘만든다’는 표현을 하지 않고 ‘짓는다’는 표현을 씁니다. 오르간 빌더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파이프 오르간을 반포성당에서 만날 수 있다면, 그 악기를 통해 비파와 수금, 나팔과 뿔 나발 소리가 성전을 가득 메우고 신자들의 가슴 깊은 곳을 울려 함께 벅찬 기도를 하느님께 드릴 수 있다면, 더 없이 기쁘겠습니다.

아울러 이 좋은 악기를 감당해 낼 수 있는 연주자들도 함께 양성하여 미사 때마다 더욱 충만한 소리를 봉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두 분의 앞으로의 꿈을 듣고 싶습니다.

 

 이: 교회음악 발전에 기여하는 음악가이자 좋은 교육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 제 꿈이 조금은 거창한데요(웃음), 교회음악을 공부하면서 갖게 된 꿈입니다. 교회음악에 종사하는 전문인력을 양성하여 한국 교회음악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교회음악가들이 각 본당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이루는 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사실 이 꿈은 교구, 본당의 신부님들과 공동체 그리고 저와 같은 교회음악가들이 힘을 합쳐 먼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해야 하는 큰 그림입니다. 우리 세대에서 완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밀알이 되고 싶습니다.

 

2015년 5월 정오음악회시리즈 초청 연주(경동교회)

 

▶ 좋아하는 성경 구절과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좋아합니다. 당연히 여러 버전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 성가도 좋아하지요. 그리고 J.S.Bach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좋아합니다, 독일에서 대림과 성탄 시기에 널리 연주되는 곡인데 많은 성가곡들이 이 곡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나왔습니다.

 

 강: 시편 98편, “새로운 노래를, 비파와 함께 나팔, 뿔 나발 소리와 함께 주님께 찬미 노래 드리라”는 내용이 제가 교회음악 공부를 시작하게 되자 마음에 들어 온 구절입니다. 반포성당에서 남편을 지휘자로 모시고 함께 미사를 봉헌하면서 저희 부부가 본받아 한결같이 유지하고 싶은 모습이 이 시편에 담겨 있어 요즘 들어 더욱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강: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가 J.S.Bach여서 그의 작품들을 주로 즐겨 듣는데 그 중 마태수난곡을 특히 좋아합니다. 독일에서는 전례시기에 맞춘 교회음악 연주회가 다양하게 열리는데 사순시기가 되면 여러 전문연주단체들이나 성가대들이 연주하는 바흐의 마태수난곡, 요한수난곡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강: 약 3시간 길이의 방대한 규모의 곡이라 전공서적을 통해 글로만 배우고 들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이 곡을 유학시절 매해 또는 격년으로 성당과 연주회장에서 자주 접하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고 가사를 음미하며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전제로 한 곡이지만 전례시기와 상관없이 언제고 필요할 때 저에게 힘을 주는 곡입니다. 이 중 몇몇 아리아들을 반포성당 신자 여러분과 함께 듣고 싶어 추천해 드립니다.

 

Mache dich, mein Herze, rein (나의 마음을 정결케 하여, 내 손으로 예수님을 묻어 드리리)

 

 

Erbarme dich, mein Gott (저의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Aus Liebe will mein Heiland sterben (구세주는 사랑으로 인해 기꺼이 죽음을 맞이하시고)

 

 

인터뷰를 하면서, 두 분은 하느님께서 손수 빚어 부부로 이으신 또 하나의 걸작품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자신에게 모자란 부분을 다른 한 쪽에서 찾고 배우며 사랑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신앙 안에서 미래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여백을 차곡차곡 채워가는 모습이 너무나 예뻤습니다. 이 아름다운 부부 음악가의 앞길에 주님의 평화와 은총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프로필

 

♣ 이병기 예로니모 님

예원학교 졸업,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국립음악원 졸업, 독일 자르브뤼켄 국립음대 디플롬, Konzertreife 졸업, 국민대 강사 역임

현재 서울대교구 반포성당 아우라 성가대 지휘자, 서울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단원

 

♣ 강다영 크레센시아 님

선화에술중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및 동대학원 졸업,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전문연주자과정 졸업, 독일 자르브뤼켄 국립음대 교회음악 디플롬 오르간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현재 가톨릭대학교 출강, 명동성당 오르가니스트, 동판교성당 청년성가대 지휘자, 수원가톨릭 오르가니스트 연합회 회장

 

인터뷰 진행 및 정리: 김주연 글라라(사목협의회 교육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