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성전 설계에 대한 생각 6

무모한 일이다. 무얼 안다고 이런 글을 쓰겠는가? 그러나 이 단상들은 건축에 관해서가 아니라 성전에 관해서이고, 실수요자의 입장에서 집 짓는 전문인들께 드리는 바람이다.

 

때때로 성전 건축에서도 실용성과 예술성이 부딪힌다. 실용이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생산을 담는다면, 가치와 자세의 표현인 예술은 미래를 제시한다. 그 균형과 시너지에 보탬이 되고자, 실용을 내세운 맹목성과 예술을 앞세운 독단성을 경계하고자, 창피를 무릅쓰고 몇 줄 적는 선의와 용기를 헤아려 주기 바란다.

 

새 성전이 옛 성전을 그대로 이을 수만 있으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전승은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성미술품을 될수록 그대로 옮길 것이다. 더 좋은 재질과 작품이 있더라도 제대, 독서대, 해설대도 지금처럼 사용할 것이다. 감실과 성체등, 십자고상, 십자가의 길 14처, 들음의 성모상도 지난 날 그랬듯이 반포성당의 유아세례부터 장례예절까지 앞으로도 함께할 것이다.

 

새 성전에 잇고 싶은 옛 성전의 모습 중 또 하나가 제단 뒷벽이다. 밥공기 크기부터 작은 국수 사발 크기까지 희뿌연 색감의 돌들이 가득 모인 벽이다. 어느 날, 그 돌들이 흡사 꼬물거리는 양떼처럼 보였다. 벽 한가운데 놓인 육각형의 감실이 마치 착한 목자의 현존인 것 같은 영감을 받았다. 그때부터 그 벽을 양떼라고 불렀지만, 그것이 작품 의도였는지 아무도 모르고 관련 문헌도 없을뿐더러, 누가 그 벽을 구상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옛 성전의 성미술을 총감독하신 김교만 선생님의 영감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그 형상을 옮기고 싶었는지, 지하 마리아 홀의 무대 뒤 벽면도 돌들을 모아 비슷하게 꾸몄지만, 돌의 모양과 질감이 전혀 다르다. 어쩌면 제단 뒷벽은 예술적 의도가 담기지 않은 우연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성전이 세워진 1979년 무렵에 지은 성북동 어느 고급 주택의 벽면도 우리 제단 뒷벽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그런 돌벽이 유행했었다는 가설이 될 수 있다.

 

어쨌거나, 그 돌벽이 양떼의 모습으로 지난 43년간 감실을 뒤받치며 우리의 전례와 기도에 도움을 주었으므로, 그대로 이어 새 성전에 보존하고 싶다. 단순히 그런 돌벽이 유행하던 시대를 옮겨 담는 것도 역사적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처럼 쉽게 되는 일이 있는가? 벽을 떼어내는 기술과 비용과 보관이 만만치 않다. 그 과정에서 적어도 벽면의 20% 이상이 손실될 것이다. 같은 돌을 구하는 것도 문제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뜻이 중요하다. 뜻이 있으면 길은 열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