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성전 설계에 대한 생각 5

본당이란 주임사제가 교구장 주교로부터 사목을 위임받은 지역의 성당을 말한다. 옛날 옛적엔 산과 강 같은 자연지형으로 형성된 본당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고 일생을 마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다른 본당에서 혼배성사를 올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요즘 본당은 그런 본당이 아니다. 편리한 교통에 아름다운 성전, 넉넉한 공간을 갖춘 본당이라면 관할지역보다 큰 소명이 따른다. 서울에서 반포성당처럼 교통이 편리한 곳을 찾기 어렵다. 새 성전을 지으면서 지역 본당 이상의 기능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이다. 그런 소명을 외면하면 본당 이기주의에 빠진다. 우리 성전에서 부부가 되어 하늘을 향해 행진하고, 우리 성전으로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들으며 기도하러 오는 분들이 계시면, 반포에 사는 교우들의 기쁨과 긍지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대중교통이 편리해도, 개인차량을 운행할 필요는 있다. 자가용 차량에 익숙해지면 거리에 상관없이 차를 타게 된다. 그런 풍조를 거슬러 본당이 싸울 일은 아니다. 지하로 들어갈 주차장은 아무리 넓어도 모자라겠지만, 넓을수록 좋다. 문제는 돈이다. 지하층이 깊어질수록 건축비는 가파르게
올라간다. 공사비의 많은 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에 들어갈 것이다. 그래도 깊이 파야 한다. 땅 위에 건물을 올리고 나면, 지하를 더 이상 팔 수 없기 때문이다.

 

돈 걱정을 일단 제쳐 놓고, 원하는 대로 지하를 파려고 했지만, 건축법은 지하층의 총 넓이가 만평방 미터를 넘으면 공개공지 등 다른 요구를 한다. 그래서 지하 5층 이용 면적의 1/2에서 멈췄다. 거기에 기계실과 저수조 등을 설치하고, 지하 2~4층에 100대를 주차한다. 하느님께서 눈을 감고 침묵을 지키셔도 교우들이 다투지 않도록 주자 공간이 비좁지 않아야 하겠다.

 

지하 1층에는 강당 겸 연회장, 주방과 회합실이 들어간다. 여닫이문으로 방 크기를 늘리고 줄일 수 있으면 편리할 것이다. 그런데 지하 1층에는 반드시 햇빛이 넉넉히 들도록 하고, 자연 환기도 되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말로 ‘뜨락정원’이라고 번역된, 이른바 ‘선큰’을 조성하여야 하는데, 문제는 면적이다.

 

가뜩이나 좁은 바닥에 선큰과 자연 채광이라니?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지하 1층이 아무리 넓어도 빛이 없고 벽이 숨 쉬지 않으면 마음이 좁아진다. 좁은 마음에 너른 방은 없다. 반포성당의 지하 회합실은 코로나19 이후 왜 꽁꽁 닫혔을까? 우리 새 성전은 코로나19 이후 첫 설계작이다. 새 성전 지하 1층에 강당과 회합실의 면적이 줄더라도 반드시 뜨락정원을 만들어내야 하고, 그러려면 교우들의 가치관과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