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성전 설계에 대한 생각 2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회중이 모여 미사 성제를 거행하는 전례 공간, 곧 성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500평 남짓한 대지에 1,000석의 성전을 설계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만한 좌석의 성전을 마련하지 못하면 굳이 새 성전을 짓지 않을 겁니다. 성전이 큰 용적을 차지하니, 나머지 공간이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성당에는 하나의 성전만 두는 것이 교회의 지침입니다. 때때로 사목적 편의에 따라 성전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겠지만, 성당에는 단 하나의 감실을 두게 되어 있고, 감실이 없는 장소를 소성전이라고 부르는 것도 금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성체조배실을 따로 만들어 그곳에 성체를 모시는 것도 올바른 전례가 아닙니다. 성체조배는 성당 안 유일한 감실이 있는 성전에서 하는 것이 교회의 가르침이며 전례신학에 맞습니다.
새 성전을 지어도 옛 성전만큼 아름다울 수 없을 것입니다. 옛 성전에 우리 공동체의 기도가 서려 있습니다. 이제 강산이 변하여 새 성전을 짓지만, 옛 성전의 건축미와 추억과 자부심을 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단의 도형과 돌벽면, 감실과 제대 등 성미술품을 모두 새 성전으로 옮길 것입니다. 다만, 현 성전의 유리화는 보수하고 세척하여도 오랜 연륜을 숨길 수 없어 새 성전과 어울리지도 크기도 맞지 않아 고심이지만, 성전이 아니라면 성당 안 다른 공간에서라도 보존할 것입니다. 정오 즈음, 햇빛을 투과하여 제단을 비추는 삼각형의 유리화 지붕은 반포성당의 상징과 같으므로 그대로 옮겼습니다.
실은 옥상 정원을 만들어 회합 공간으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자니 옥상이 성냥갑처럼 되어 버려 유리화 지붕을 세울 수 없고, 장차 5m 높이의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할 수 없고, 이제껏 가꾸어 온 건축 예술의 전통과 기도 분위기도 이을 수 없었습니다. 옥상 정원이 아깝습니다. 그러나 전례 공간을 결코 희생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기능이 아니라 삶이기 때문이고, 반포성당이 지난 46년간 우리 삶을 보듬고 키우며 버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전례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옥상 전체를 정원으로 설계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50명 정도가 이용할 수 있는 자그마한 정원을 확보한 걸로 아쉬움을 조금 달랠 수는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성전 내부의 조명과 음향과 환기 시설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를 어떻게 구현하느냐가 설계의 역량이며 예술적 영감입니다. 창호를 배치하면서 환기와 빛을 설계하고, 음향을 고려하고, 유리화를 구상하려면 깊이를 갖춘 건축 철학과 성전 신학이 있어야 합니다. 새 성당 건축의 주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고 일관되어야 합니다. 새 성전은 코로나 이후 아마도 한국 교회에서 첫 번째로 지은 성당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환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기계적 환기가 요즘 추세라지만, 지난 2천년동안 온 세상 성당의 환기는 자연 환기였습니다. 지난 46년의 은총과 추억을 보듬고, 기술과 예술이 어우러진 새 성전을 꿈꾸며, 함께 간곡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