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성전 설계에 대한 생각 1

건축에는 시대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성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을 때의 문화, 사상, 경제, 정치, 기술이 녹아 있고 시대의 징표가 드러납니다.

 

본당이 기능하려면, 전례 공간, 회합(교육) 공간, 친교 공간, 주거 공간, 그리고 시대적 요청인 주차 공간이 필요합니다. 명동대성당의 넉넉한 대지에 지어진 성전이 1,000석입니다. 반포성당의 대지는 500평 남짓합니다. 이 좁은 땅으로, 한강변을 따라 반포대교에서 동작대교로 이어지는 지역에 들어설 초고층 아파트 단지를 섬겨야 하기에, 1,000석의 전례 공간을 먼저 설계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용적률과 층고 제한에 묶여 다른 기능의 공간이 줄어듭니다. 어느 공간을 살리고 어느 공간을 희생해야 할지, 갈등과 고심으로 새 성전의 설계 도면을 그렸습니다. 100번도 넘게 고쳤습니다. 그때마다 막다름은 조금씩 새 길을 열었습니다.

 

반포성당이 누린 축복 중의 하나는 150평 남짓한 마당입니다. 서울의 성당 중에서 이런 안뜰을 가진 곳이 없습니다. 아기 예수를 안고 성모님께서 앉아 계신 마당은 기도와 위로, 전교와 친교의 공간이었습니다. 새 성전을 지으면서, 이 마당을 어떻게 살려야 할지 고심했습니다. 건물을 기둥 위에 올려서 마당을 트고 파랑새 공원과 훤히 통하게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지 전체가 마당이 되는 줄 알았지만, 그 자리에 사무실, 사제집무실, 성물판매소 등의 업무 공간과 만남의 방이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마당이 줄어듭니다. 기능만 생각하면 한 뼘도 남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편리하다고 다 좋은 집이 아닙니다. 마음이 넉넉해지고 숨을 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 마당이 줄어들면, 영영 되찾지 못합니다. 나중에 마당을 늘리겠다고, 건물의 한편을 부술 수도 없습니다. 결국 마당 150평을 살리려면 만남의 방을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필로티 공간의 마당은 지붕이 있으므로, 봄, 여름, 가을에 탁자와 의자를 내놓으면, 테라스가 되어 그대로 만남의 방이 연장됩니다. 그저 한겨울만 비좁게 만나면 됩니다.

 

만남의 방은 아무리 커도 모자랄 겁니다. 그러나 좁은 대지 위에 안뜰 150평을 지켜낸 새 성전의 모습은 우리가 어떤 시대 상황과 조건 속에서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며 하느님을 예배했는지 후손들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