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가톨릭 신학 17: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사제 서품 받기 전 사제 후보자는 서품 성구(聖句)를 정하는데, 사제 삶의 지침이자 이정표 같은 것입니다. 저는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 “길, 진리, 생명”을 선택했습니다. ‘길’이란 ‘도로’와 다릅니다. 도로는 인간이 빨리 가기 위해, 편히 가기 위해 만든 인공적인 것입니다. ‘길’은 인간이 오랫동안 거쳐 간 흔적이고, 여기에는 인간의 삶이 함께합니다. 옛말에 물이 흐르면 강이 되고, 사람이 걸으면 길이 된다고 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본시오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요한 18,38 참조) ‘진리’의 그리스어 단어는 ‘알레테이아(aletheia, ἀλήθεια)’입니다. a-는 반대를 의미하는 접두사이고, lethe는 망각을 의미합니다. 진리, 즉 ‘알레테이아’는 ‘잊혀지지 않는 것’, ‘언제나 그대로인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옳은 것입니다. 본시오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대답하지 않으셨지만, 평소에 “나는 진리이다.”(요한 14,6 참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올바른 진리는 오직 하느님이신데, 하느님은 말씀을 통해 당신을 알려주시고, 구원으로 이끄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이 진리이십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32)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 안에 당신의 숨(=영, 정신)을 불어 넣어 주셨고, 인간은 하느님 닮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영적이고 정신적인 존재인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였습니다.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자유를 선물 받았지만, 자유의 남용과 불순종이라는 원죄 때문에 최초의 순수한 영혼이 손상되었고, 하느님의 은총과 도움이 있어야만 회복되고 완성될 수 있습니다. 오직 진리이신 하느님 말씀이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입니다.

 

어떻게 진리를 만나고 깨달을 수 있을까요? 진정한 자유, 즉 인간 구원을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요한 8,31-32 참조) 예수님 안에 머물기 위해 예수님 말씀을 자주 듣고, 머리와 가슴에 새겨야 하고, 무엇보다 그분 몸을 내 안에 모시고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내 힘으로 무언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무언가 하시도록 조용히 머물고 협조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위대한 능력을 가진 것 같지만, 자기 머리카락 한 올 검거나 희게 할 수 없는 힘없고 나약한 존재이며, 언제나 죽음을 앞둔 존재입니다.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 아빌라의 대 데레사 성녀가 하신 말씀인데, 이는 구약의 지혜서 5장 14절의 (삶은) “단 하루 머물렀던 손님에 대한 기억”이란 구절에 근거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 삶이 얼마나 순간이고, 찰나(刹那)이며, 금방 사라지는 것인지 알려줍니다. 인간 삶이 속절없이 허무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 말씀은 동시에 하느님의 영원하심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는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습니다.(시편 90 참조) 하느님은 영원하시고, 하느님 말씀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으로 이끄는 길, 진리, 생명입니다. 이분에게 우리 삶의 길과 목적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출처: 서울주보 제4면 (2022. 0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