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해룡 안드레아 前 총회장]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소해룡 안드레아 前 총회장님은 SK이노베이션에서 34년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보람 있고 기쁨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시면서, 신앙과 인생 선배로서 우리에게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고 계신다.

 

은퇴 후 가톨릭신학원에서 3년간 신학, 철학, 교리 등을 공부하면서 반포성당 사목협의회 총회장직을 3년 봉사하셨다(제18대, 2016. 11. 13. ~ 2019. 11. 09.). 삶의 성찰을 위해 50일 동안 산티아고 800km를 도보로 순례하고, 40일 동안 자동차로 알프스 탐방을 다녀오셨다. 또 그림을 시작해 2018년 그룹 전시회에 출품하셨으며, 친구들과 5인조 뮤직밴드 ‘블루에어’를 결성, 건반을 배우기 시작해 2019년 말에는 첫 연주회를 갖기도 하셨다.

 

저서로는 산티아고 순례기 [나는 왜 이 길을?](2017년), 알프스 여행기 [60대 중년들의 40일 알프스 탐방](2019년), [신앙 여정과 함께하는 그림 성경](2020년)과 화보집 [同行](2021년) 등이 있다.

▶ 총회장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하느님을 알게 되셨나요?

 

가톨릭교회와 나의 첫 만남은 우연이었어요. 돌이켜 보면 하느님의 부르심이었어요.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후, 군대 선배의 부탁으로 대학생인 선배 여동생의 서울 안내를 하게 되었어요. 전 서울 안내를 위해 당시 가장 번화가였던 명동을 갔어요. 선배 여동생은 아주 독실한 구교 집안이었고, 신앙심이 아주 깊은 아가씨였는데, 그때까지 전 가톨릭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이 없었고 성당에 가 본 적도 없었어요. 그녀는 꼭 명동성당을 방문하고 싶어 해서 같이 명동성당을 가게 되었어요.

 

그날은 1978년 8월 7일, 명동성당에서 마침 교황 바오로 6세의 서거 추모미사가 거행되고 있었어요. 교황님 추모미사여서 추기경님을 비롯한 많은 신부님들이 미사를 공동 집전하고 있었고, 성당 안은 발 디딜 틈 없이 신자가 많았어요. 처음 보는 성당 내부나 제대도 생소했지만, 미사 거행 모습은 큰 충격이었어요. 미사의 웅장함과 장엄함,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성가대의 장송곡 합창 등 성스러운 모습과 분위기는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하던 또 다른 세상이었지요. 전율을 느끼며 나에게 하느님이 다가오시는 것을 느꼈어요. 바로 ‘하느님의 부르심(성령)이요, 만남이었어요.’

 

미사 후, 한동안 우리는 성전에 앉아 기도를 드렸고, 이 선배 여동생을 통하여 나를 이곳 명동성당으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지요. ‘오소서 성령님, 제가 여기 왔나이다!’ 나를 가톨릭교회로 인도해 준 이 선배 여동생은 3년 후 나의 아내가 되었어요.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두 가지 복을 동시에 주셨어요. 하나는 하느님과의 만남이요, 다른 하나는 천사 같은 인생 반려자와의 만남입니다. 그렇게 나의 신앙 여정은 설렘과 행복감을 안고 시작되었지요.

 

▶ 총회장님 가정은 하루의 시작과 끝을 가족이 함께 기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제는 어린 손자들도 자연스럽게 묵주기도에 동참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야기 해 주시겠어요?

 

아내는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나 기도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어요. 아내의 적극적인 인도를 받아 신혼 초부터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하였는데, 아침에는 간단한 기도지만 저녁에는 잠자기 전 ‘가톨릭 기도서’에 나오는 주요 기도를 성모님 상 앞에 촛불을 밝히고 앉아 바쳤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곧 익숙해져 매일 기도하며 성가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요.

 

지금도 우리 집의 하루는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을 맺지요. 아내와 나는 매일 새벽미사에 참례하고, 아침기도는 성당 가는 길에 바쳐요. 식사 전후의 기도는 같이 사는 손주들이 해요. 아내와 나는 가능한 시간이 되면 함께 기도를 바쳐요. 운전을 하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먼저 묵주기도부터 시작하지요. 저녁을 먹은 후, 아내와 나는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하면서 산책을 해요. 그리고 저녁 9시가 되면 식구들은 거실에 모여 주모경, 저녁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데 기도 선창은 손주가 합니다.

 

우리 집은 거의 매주일 저녁에 세 딸네가 모여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데, 즐거운 식사 시간이 끝나면 모두 모여 묵주기도를 시작합니다. 성모님 앞에 앉아 기도하는 광경은 조그만 성당 같이 느껴져요. 묵주기도 1단은 큰 손주가, 2단은 첫째 사위가, 3단은 둘째 사위가, 4단은 막내 사위가, 마지막 단은 내가 선창해 바치고 나서 저녁기도와 가정을 위한 기도를 하고 헤어집니다. 신앙의 길에 묵묵히 따라와 주는 사위들이 고맙고 대견하지요.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통교를 돈독히 해주며, 기도를 통해서 믿음이 증가한다고 생각해요. 또 기도의 목적은 사랑의 증가에 있으며 기도는 이웃사랑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묵주기도 역시 몇 단을 바쳤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겸손과 사랑이 증가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봐요.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 기도해야 하며, 기도하는 시간은 하느님과 그리고 성모님과의 대화이며 친교입니다.

 

▶ 34년간의 직장 생활을 은퇴하고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시면서, 신앙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더욱 보람되고 알찬 생활을 하시게 된 계기가 무척 궁금합니다.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직장 퇴직 후, 지금까지 내 삶의 여정을 뒤돌아보고 정리하며,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하기 위해 제주 올레길을 홀로 걸었어요. 모처럼 한가로이 20일 을 걸으면서 매일 성당을 찾아 미사에 참례하였고, 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어요. 올레길은 낯선 사람들이 만나 쉽게 동화되어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 담소하는 치유의 길이었어요. 아! 나만 인생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구나, 새로운 삶 또한 내가 가야만 하는 또 하나의 여정이라는 것을 달갑게 받아들이기로 했지요.

 

나의 지나온 삶을 성찰한 결과, 지금까지 나의 삶은 ‘감사와 기도’로 정리할 수 있었어요. 현재까지 순탄하고 안정된 삶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하느님의 은총이었고, 가족들의 기도 덕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삶은 지금까지 받은 은총을 감사와 봉사로 되갚아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어요.

 

먼저, 나의 종교인 가톨릭을 더 잘 알고 이해하기 위해 가톨릭신학원에 입학하기로 했어요. 그곳에서 성경, 신학, 철학, 교회사를 공부하고 싶었어요. 또 공부를 마치면 그동안 꼭 걷고 싶었던 산티아고 800km 도보 순례 여정을 떠날 계획을 세웠어요. 그래서 하느님을 체험하여 예수님을 닮은, 예수님처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지요! 이러한 삶이 하느님 은총에 대한 진정한 보답이고, 남은 생의 행복이라 생각했지요.

 

▶ 가톨릭교리신학원에 다니신 경험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어요?

 

2014년 1월 가톨릭교리신학원 입학 시험에 합격하여 34년 만에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 또 다른 많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 도전이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초석이 되리라 믿었어요.

 

교과 과정은 신학대학 4년 과정을 2년으로 축소해서 공부하는 것이었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 40분까지 수업이 진행되었어요. 그리고 수업 후에는 각종 특별 활동에 참여합니다. 예를 들어 합창부는 성가 연습을 해야 하고, 전례부에는 성당 청소와 제대 꽃꽂이 등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2년 동안 총 50개 과목을 이수하고 졸업 논문을 써야 합니다. 또한 모든 학생은 자치 활동에 참여해야 하며, 이 자치 기구를 통해 학사 일정상의 모든 활동을 자체적으로 해결합니다.

 

그렇게 신학원 과정을 마치면 서울대교구장님으로부터 선교사와 교리교사 자격증을 수여받게 되지요. 그런데 저는 성당에서 사목협의회 부회장직을 맡게 되고, 직장 퇴직 후 생각보다 바쁜 일정에 학년을 연장하여 2년 과정을 3년에 걸쳐 공부하게 되었지요. 아는 만큼 신앙도 깊어지는 것을 경험했어요. 3년에 걸친 공부를 마치고 추기경님께 졸업장을 받을 때 참으로 감격스러웠지요!

 

▶ 산티아고 800km 도보 순례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말씀 부탁 드립니다.

 

제주 올레길에서 계획한 대로 2017년 4월 17일 스페인 산티아고 도보 순례 여정을 떠났어요. 하루에 20-30km를 걸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지만 나름 사전 준비를 많이 했어요. 도보 순례를 시작하면서 앞으로 내 인생의 방향을 알려 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요청했고, 해답을 얻기 위해 순례 중에 하느님을 뵈려고, 아니 체험하려고 열심히 기도 드렸어요.

 

34일 여정인 산티아고 도보 순례를 더 보람 있게 체험하기 위해서 스스로 4가지 약속을 했지요. 첫째, 순례 길에 매일 미사 참례하기 둘째, 매일 묵주기도 20단 바치기 셋째, 순례 길에 모든 성당과 수도원을 방문해 주모경 바치기 넷째,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기. 나는 이 약속을 끝까지 지켰는데, 순례 길 내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감사함을 매 순간 체험할 수 있었어요. 다른 분들에게도 도보 순례를 권하고 싶습니다.

 

순례는 걷는 것과 기도와 영적 묵상이 합쳐질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진정한 신성은 마음 속 성전 안에 지은 제단에 존재하며, 내면의 성전이 지닌 미덕은 물리적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순례는 나를 찾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순례 중에 많은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무슨 이유로 온 것인지 궁금했어요. 나는 순례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알게 됐어요. 내가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은, 이 순례 길에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성인들의 전구를 받아서 되기도 하지만, 모두 내 자신에게 달려있고 나의 의지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내게 달렸기 때문이지요.

 

나는 앞으로 삶을 이렇게 살기로 결심하고 다짐했습니다.

첫째, 앞으로 남은 삶을 더욱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내 삶은 결국 내가 움직여야 하고 내가 노력하고 내가 책임져야 한다.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둘째, 앞으로 남은 삶을 감사하며 봉사로 나누며 살 것이다. 나는 그동안 하느님 은총을 가득 받고 순탄하게 살았어요.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삶이지요.

셋째, 앞으로 남은 삶을 항상 겸손하고 온유하게 하느님을 향하여 살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 길의 노란 화살표처럼 내 인생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만의 노란 화살표를 찾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청했어요. 그것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었어요.

 

▶ 총회장님께서는 직장을 은퇴하신 후, 교리신학 공부, 활발한 봉사활동, 도보 성지순례, 음악, 미술 등 새로운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해 그 경험을 담은 다섯 권의 책을 쓰셨습니다. 본받고 싶고 부러울 따름입니다. 한 말씀 해 주시겠어요?

 

산티아고 성지 순례를 하면서 매일 블로그에 순례 길에서 보고 느낀 것을 올렸고 가족들이 응원의 댓글을 달아 주었어요. 34일간의 꽤 많은 양의 산티아고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사진이 블로그에 쌓였고 주변 지인들이 책으로 출판하기를 권했어요. 나도 매일매일 기록했던 순례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과 괜한 종이 공해를 유발하는 것은 아닌지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15년 이상 출판 일에 종사하던 처제 수녀가 순례기를 읽으면서, 아름다운 풍경과 지루한 오르막 내리막길과 땀에 전 배낭과 맛있는 커피 한 잔과 알베르게의 잠자리와 매일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열심히 성당을 찾아다니는 발길이 꿈에도 그리던 순례 길을 걷는 것 같았다고 하면서, 꼭 책으로 만들어서 동료 수녀님들도 산티아고 순례에 초대하고 싶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했어요. 용기를 내서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어요.

 

그 뒤에도 친구들과 40일간의 알프스 자동차 탐방 기록을 담은 [60대 중년들의 40일 알프스 탐방]이라는 책을 썼어요. 우연한 기회에 영어 성경을 읽고 그 성경에 나온 그림을 직접 그리고 성경 구절을 쓰고 그림 성경 중간중간에 나의 신앙 여정을 기록해서 [신앙 여정과 함께하는 그림 성경]을 출판했어요. 성경 그림과 성경 구절, 나의 그림과 신앙 여정까지 포함하니 약 500페이지의 두꺼운 책이 되었지요. 그리고 2021년에는 내가 그린 그림들을 모아 [동행]이라는 화보집을 발간했어요.

 

모두 하느님과 가족들, 주변 지인들의 도움과 격려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소해룡 안드레아 전 총회장님을 만나 뵙고, 쓰신 책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신앙이 좀 더 굳건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소회장님은 행복한 분이시다.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가지 않고 하느님 자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시는 모습이 특히 새롭게 신앙 생활을 시작한 많은 교우들의 모범으로 다가왔다. 주님, 우리들을 도와 주소서!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서양미 수산나 (사목협의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