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가톨릭 신학 9: 그리스도인에게 참된 행복이란?

“날 수 셀 줄 알기를 가르쳐 주시어, 우리들 마음이 슬기를 얻게 하소서.”(시편 89,12 최민순 역) ‘날 수 셀 줄 알아야’ 인간은 지혜와 슬기를 얻는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날 수를 헤아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젊고 힘 있고 즐거울 때는 하느님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문제 없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지나온 날과 남은 날을 헤아린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내게 죽음이 다가왔음을 깨닫는 것이고, 죽음이 다가오면 인간은 철이 듭니다. 누구나 생로병사를 겪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다 사라집니다. 날 수 셀 줄 안다는 것은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동시에 날 수 셀 줄 아는 사람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이 순간을 기쁘고 성실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작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고, 작은 손해에 맘 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 하느님이 누구신지 깨달을 수 있기에,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이라고 교회와 수많은 성인 성녀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행복은 가깝고도 멀게 느껴집니다.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누구나 공통으로 느끼는 두 가지 행복의 상황이 있습니다. 첫째, 거의 모든 사람은 좋은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행복하다고 합니다. 둘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할 때 나도 행복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행복해한다면, 우리 역시 눈물 나게 행복할 것입니다. 자식을 둔 부모님은 공감하실 것이고, 하느님께서도 그러시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게 산다면, 우리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웃으면서 하느님께 기도하며 희망한다면, 하느님께서 행복해하시지 않을까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산타 마리아 성당 광장에는 ‘Pax et Bonum’(평화와 행복)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마도 평화와 행복은 함께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평화를 통한 행복, 행복을 통한 평화! 행복을 가져다주는 평화란 무엇일까요? 평화를 뜻하는 영어 peace의 동사형은 pacify인데, 이 단어의 대표적인 뜻은 ‘평정하다’입니다. 즉, Pax가 의미하는 평화란 본래 남을 정복해서, 상대방을 굴복 시켜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Pax Romana(팍스 로마나), Pax Americana(팍스 아메리카나) 등의 예처럼 힘에 의한 평화가 바로 Pax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평화(Pax)란 절대자, 즉 하느님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하고 순종하여 얻는 평화입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행복을 밝게 보여주는 빛, 즉 ‘말씀’(Verbum)이라는 빛은 침묵과 고요 속에서 들을 수 있고, 밤하늘의 별처럼 주변이 어두워야 더 잘 보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전적으로 의탁하여 얻는 평화가 그리스도교인에게 주어지는 참된 평화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행복의 길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순종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 진리에 순응하는 것이 평화의 지름길이고, 행복한 삶의 과정이고 핵심이며 결론입니다. Dona nobis pacem!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조한규베네딕토 신부 | 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출처: 서울주보 제4면 (2022. 0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