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생의 말기의 윤리: 나에게 죽을 권리가 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에 모든 피조물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특히 인간은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인간 생명은 신성합니다. 하느님만이 인간 생명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 권리를 갖고 계시기에 어느 누구도 그 권리를 침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도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며,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치료 가능한 중환자의 치료를 포기하거나 죽음을 일부러 앞당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의료기기에 연결된 침상에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거나, 간병인에게 일상의 매 순간을 의존해야 하는, ‘존엄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인간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이기 때문에 영양 공급을 중단하여 죽도록 하는 것이 차라리 인간적이지.” “말기 환자가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해서는 안 돼.” 이처럼 고통이 심한 말기 환자가 의료인의 도움을 받아 고통을 빨리 끝내고 편안하게 죽는 것이 ‘자비’를 베푸는 일이며, 최선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중환자와 같이 ‘삶의 질’이 낮은 사람의 생명은 포기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태도는 개인의 생명권에 대한 침해일 뿐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대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그 사실’ 때문에 고유하고 존엄한 가치를 지닙니다. 삶의 질로 인간을 평가하려는 모든 시도는 인간을 물건처럼 여기고, ‘존재 가치’를 ‘소유 가치’로 전락시켜 버립니다(생명의 복음 23항 참조).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라 하더라도 인위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모든 행위는 살인죄에 해당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277항 참조). 다만 치료 가능성이 없는 가운데 죽음의 과정만 연장하는 무의미하고 과도한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앞당기려는 의도없이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죽음을 수용하는 일이며, 호스피스 완화의료로 가족과 함께 생의 말기를 의미 있게 마무리하는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삶과 죽음, 모두를 주관하시는 사랑과 생명의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영원한 생명을 믿으며, 지상의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죽음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며, 사랑의 하느님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기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성용 유스티노 신부 |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부국장

 

출처: 생명특집 (2021. 1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