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원 이냐시오 前 연령회 회장] “쉬지 말고 기도하라”

별은 일 년에 한 바퀴를 돌고, 서리는 매년 추워지면 내리기 마련입니다. 성상(星霜)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한 해 동안의 세월을 의미합니다. 지금의 성전은 40여 년의 성상을 보냈고, 많은 교우들의 추억이 담겨 있지만, 노후화로 새로운 모습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을 이해하려면, 어제를 살펴보라”(Pearl Buck)고 하였던가요? 새 성전에 대한 기대로 설레고, 또 한편으로 조금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現在입니다. 코로나19로 한국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교구의 미사가 중단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안이원 이냐시오 어르신과의 인터뷰가 진행되었습니다. 어르신은 선종봉사회장, 사목협의회 사회사목분과장, 요셉회장, 그리고 연령회장 등을 역임하신 우리 본당의 산 증인이십니다. 본당 역사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는 어르신과의 만남을 통해, 저는 마치 시간여행자처럼 아주 오래전 그 때의 본당 앞에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안이원 이냐시오 어르신과의 이야기 꾸러미를 풀려고 합니다. 모두 함께 시간여행을 해보시죠. 아마도 그 시작은 본당이 설립되었을 때, 아니면 우리 각자가 마음의 문을 열고 처음 하느님을 만났던 시점이겠지요. 래미안퍼스티지가 주공2단지이었고, 아크로리버파크가 한신1차이었던, 지금은 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여 있지만, 본당 ‘참회의 수탉’이 반포 일대를 훤히 내려 보았던 그때로 말입니다. 이 글의 마지막 단락을 읽으실 때에는 시간 여행을 마치고, 현재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우리 본당의 미래를 바라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내일이란 오늘의 다른 이름일 뿐”(William Faulkner)

 

안이원 이냐시오 어르신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통해, 과거 우리 본당의 소중한 가치를 함께 느끼고(過去), 지금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서(現在), 앞으로의 신앙생활을 계획하시길 빕니다(未來).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어르신께서는 어떤 계기로 주님을 알게 되셨고, 반포본당과의 인연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중학교 다닐 때 천주교를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장윤옥 막달레나)가 세례성사를 받은 후에 아내의 권유로 통신교리를 통해 1986년 3월 15일 반포본당에서 세례성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벌써 35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네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1989년부터는 레지오 샛별단장, 사회복지분과 사목위원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반포본당은 저에게 참으로 고마운 곳이고, 힘들 때마다 도움을 주었던 곳입니다. 어머니와 같지요. 그동안 수많은 분들과 맺은 소중한 인연이 많습니다.”

 

지금도 바로 어제 있었던 일 같습니다. 1994년 가족상을 당했을 때, 연령회로부터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그때의 고마움과 감동으로 연령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연령회는 이 세상을 떠난 교우를 위하여 기도하고 상가와 장례절차를 협의하여 도와주며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복음전파에 이바지하는 단체입니다.”

 

그런데 제 나이가 벌써 구순을 바라보아, 2021년 11월 13일 연령회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봉사란 어려운 이웃을 단순히 “돕는” 것이 아니라, “받들고 섬기는” 것이므로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도움을 주는 활동이어야 합니다. 그 동안 봉사에 임하였을 때 겸손한 태도, 감사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책임감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고,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긍정적으로 받아 드리고, 상대방의 뜻을 올바르게 파악하여 감동을 주는 봉사를 하였는지, 아니면 그 정신에 반하여 오히려 마음의 상처를 준 적은 없었는지 자성해 봅니다.”

 

▶ 그 동안 기억에 남는 것, 한 가지만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본당에서 봉사하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정말 많지요. 자꾸 옛날이야기만 하게 되는데…(웃음) 성당 자매님의 시어머님께서 거동이 불편하셔서 휠체어를 마련해드린 일, 신도들끼리 전남 함평 나산 공소 신축기금을 모아드린 일 등 많습니다. 공소 준공식 때 초대도 받고 그랬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본당 사람들은 참 정이 많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많아요.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곳도 많았지요.”

 

‘나눔의 묵상회’도 기억이 납니다. ‘나눔의 묵상회’는 故김수환 추기경님 제안으로 시작한 피정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1991년 11월 8일부터 3일간 교육을 받았습니다. 벌써 30년 전이네요. 죽음 체험도 하고 그랬는데, 관에 들어가서, 살아온 기간을 회상하는 것이지요. 삶을 돌이키면서 묵상하고 하느님과 직접 대화를 합니다. 울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 기억이 지금까지 뇌리에 사무쳐 있습니다.”

 

▶ 성당 봉사 활동을 하시면서 중점에 두었던 점은 무엇이신가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성당 봉사 활동은 특정 몇몇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봉사 활동을 할 때, 구성원의 참여 제고를 최우선적인 목표로 하였습니다. 가령 연령회 회장직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 당시에는 여러 사유로 구성원들이 이탈하여 8명이 전부이었습니다. 참담하였지요. 그 후 각고의 노력 끝에 회원을 35명까지 늘렸는데, 많은 보람을 느꼈습니다.”

 

성당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싶어도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문의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특히 새 신자의 경우가 그렇지요. 기존 신자들이 함께 도와주는 것이 절실합니다. 우리 본당의 경우 신자들의 평균 연령이 높은 편입니다. 반포 일대가 재건축되면서 젊고, 새로운 분들이 많이 우리 본당을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분들을 잘 모시는 것이 기존 신자들의 책무가 아닐까합니다.”

 

▶ 어르신께서는 광주대교구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막달레나의 집’을 기증하시는 등 일반 신자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계십니다. ‘막달레나의 집’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부끄럽습니다. 지금까지 ‘막달레나의 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말씀드리게 되었네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광주에 처음으로 주택을 구매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처음 내 집을 마련했을 때, 얼마나 기쁩니까? 정말 애지중지 여겼지요. 그렇게 지내다가 아내(막달레나)가 먼저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함께 하자고 했던 아내가 먼저 떠났을 때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아내를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우리 부부가 마련했던 집을 광주대교구에 기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광주대교구에서 시각장애인선교회로 하여금 이를 사용하게 하였고, 그것이 ‘막달레나의 집’이 되게 된 것입니다. 1996년의 일이니, 벌써 25년 전의 일이네요.”

 

 

“장윤옥(막달레나) 자매를 기억하고자 안이원(이냐시오) 부군께서 장애인들을 위해 이 집을 기증해주셨습니다”라는 현판을 보면서, 느껴졌던 감정은 아직도 새롭습니다. 지금은 확장 이전하여 외국 이주노동자 센터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 어르신과의 말씀을 나눌수록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본당에서 여러 직책을 맡으셨던 어르신께서도 새 신자이셨을 때가 분명 있었을 것 같은데, 그 때 일화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던 일이 많았지요. 저야 이제 나이도 많이 들고, 성당에 다닌 지도 오래되었지만, 누구나 새 신자일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용어조차 생소하지요. 저 역시 세례 받은 직후일 때입니다. 주변 신자들이 “그러면 자매님도 세례를 받았느냐?”는 질문을 받은 거예요. 그런데 자매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아 “자제분들이 자매이냐?”는 질문으로 오해한 겁니다. 그래서 제가 “자매가 아니라, 남매”라고 답변했던 적이 있었지요.” (웃음)

 

새 신자는 약간은 긴장되고, 모든 것이 낯설 수밖에 없지요. 기존 신자들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 새 신자 이야기가 나와서 여쭙니다. 어르신께서 새 신자에게 특히 말씀해주실 사항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먼저 새 신자 여러분께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천주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서 교리 공부 기간이 길고, 신자가 되기 위한 여러 거쳐야할 과정이 있습니다. 그 과정을 성실히 마치시고, 세례성사를 받으셨으니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새 신자가 되었을 때의 마음가짐을 계속 간직하려고 노력하십시오.”

 

몇 가지 말씀을 드리면, 미사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봉사단체 중 1개 이상에 가입하여 활동하셨으면 합니다. 주님 안에서 즐겁고 행복하고, 그리고 서로 사랑하면서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헛되이 놓치지 마십시오.”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경 읽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처음에는 쉽지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묵주기도를 조금씩이라도 바치는 습관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 오랜 시간 본당에서 활동하시던 어르신께서는 성전 재건축에 대하여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어떠신지요.

 

지금 본당은 너무 아름답지요. 본당 설계 및 시공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헌신하셨고, 그분들의 헌신으로 본당은 높은 예술적 가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 참회의 수탉, 마당의 성모자상 등은 본당의 자랑거리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노후화가 심각해진 이상 성전 재건축은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본당에서 수십 년 간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성미술품이 새로운 성전에도 최대한 많이 옮겨갔으면 합니다. 그러한 성미술품은 지난 40여년 간의 교우들의 추억이 담긴 본당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니까요.”

 

인근 아파트의 재건축과 맞물려, 앞으로 본당의 분위기도 많이 바뀔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 신자들이 우리 본당의 좋은 전통을 새 신자들과 공유하고 키워 나갔으면 합니다.”

 

이렇게 안이원 이냐시오 어르신과의 대화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구순을 바라보시는 어르신과의 약 2시간의 대화는 수십 년의 시간을 넘나들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본당의 역사를 말씀하셨지만, 어르신의 시선은 과거가 아닌 미래에 있었습니다. 새 신자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감추지 못하셨고, 이를 위한 기존 신자의 책무도 강조하셨습니다.

 

마치는 글로서 어르신께서 연령회를 떠나시면서 하신 인사말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연령회 회원 여러분, 사랑하면서 살아도 모자라고, 감사하면서 살아도 모자란 인생, 항상 주님 안에서 즐겁고 행복하고, 그리고 서로 사랑하면서 화목하게 건강하게 살아가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박동열 라파엘 (사목협의회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