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특집) 김대건·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th ⑨

<올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이자 김대건 신부님이 유네스코 세계기념 인물로 선정된 의미 있는 해입니다. 희년을 지내는 동안, 하느님을 사랑하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같은 해에 태어난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모범을 본받아 두 분의 영성을 우리 삶에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성무 활동의 달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

 

최양업 신부님을 흔히 ‘땀의 순교자’라고 부르는데, 그 땀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1849년 4월 15일에 사제 서품을 받으신 신부님은 7개월 동안 만주 지역에서 성무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7개월 동안…. 베르뇌 신부님의 명령에 따라 병자들을 방문하고 신자들에게 주일과 축일에는 짧은 강론을 하며 어린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대축일에는 고해성사를 주며 성체를 배령하게 해주는 등 성무를 수행하였습니다.”(1850년 10월 1일 서한)

 

신부님은 말하자면 한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에서 활동한 해외 선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해 12월에 의주 변문을 통과하여 조선에 들어오셨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페레올 주교님을 뵈러 충청도로 가려 했는데, 다블뤼 신부님의 병이 위중하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병자성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 후 그의 계속되는 성사의 여정, 땀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저는 하루 동안 주교님과 담화를 나눈 후 잠시도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곧바로 전라도에서부터 공소 순방을 시작했습니다. 하느님의 보호를 받아 저는 6개월 동안에 5개의 도를 무사히 돌아다녔습니다.”(1850년 10월 1일)

 

이 다섯 개 도는 당시 교우촌이 있던 지금의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로 추정됩니다. 첫해에만 3,815명을 방문하여 세례, 고해, 성체 등의 성사를 집전하셨습니다. 당시의 교우촌이 산골 깊은 곳에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고, 6개월간의 활동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초인적인 새 사제의 힘으로 느껴집니다. 한편, 최양업 신부님의 사목 관할 구역 내에는 127개의 공소가 있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이 활동하던 1850년대의 공소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면 전국 공소의 69% 이상을 유일한 한국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께서 맡으셨습니다. 이 정도 되면 ‘성무 활동의 달인’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요?

 

당시에도 중요한 성무 활동은 성사와 기도였는데, 교리교육 역시 중요한 몫을 차지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성격으로 보면 교리도 충실하게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1858년 베르뇌 주교님의 엄격한 규정(사본문답을 다 외우게 함)으로 400명의 예비신자 중에 세례받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보고하면서 당시 교리문답을 외우는 장면을 편지에 남기십니다.

 

제가 공소 방에 들어가 찰고를 받을 때… 놀랐습니다. 겨우 8~10세밖에 안 된 어린아이들이 교리문답 전체와 매우 긴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의 경문을 청산유수로 암송하여 외우는 광경이 신기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노파들이 우둔함을 무릅쓰고 열성을 부리는 모습을 바라볼 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재능도 부족하고 기억력도 흐려서 경문을 하루 종일 배우면서도 한마디도 입에 담지 못하며 애를 쓰는 모습이 안쓰럽기 짝이 없었습니다.”(1858년 10월 3일 서한)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님, 그 ‘땀’은 성무 활동을 의미합니다.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출처: [특집] 김대건•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th (2021.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