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금육 때 네 발 달린 동물만 안 먹으면 된다던데 사실인가요?

요즘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먹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맛집 문화를 통해 미식을 즐기는 것이 한창 유행을 하더니, 이제는 먹방을 통해 과식을 기꺼이 즐겨보는 문화도 눈에 띕니다. 세상이 이토록 먹을 것에 열광하는 중인데, 교회는 반대로 금식, 금육 등을 아직도 가르치며 먹을 것을 자제하라 하고 있죠. 시대에 뒤떨어지는 걸까요?

 

아닙니다. 교회가 금식과 금육을 강조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입니다. 우리 시대의 먹는 문화는 사실 개인에 초점이 맞춰진 ‘개인’의 즐거움입니다. 음식을 줄이고 다이어트에 돌입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개인의 기쁨을 위한 개인적 실천에 국한되는 문제일 뿐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음식을 개인의 소비물이라는 차원에서만 바라보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음식을 개인의 차원에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나아가 공동체와의 관계 안에서 바라보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금식, 금육은 그런 시각 안에서 나온 산물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등장하기 이전의 종교나 철학들은 단식을 개인의 건강과 복을 희망하며 실천하는 극기로 대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세상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지로, 또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에 오리라는 희망을 드러내는 표지로 단식을 대했습니다. 이로써, 단식은 하나의 기도의 형태로 완성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가톨릭출판사 ‘4천년의 기도, 단식’ 3장 참조)

 

또한, 금육과 금식은 우리가 음식이라는 매개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라는 것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금식, 금육을 오랫동안 자선과 연결시켜 실천해 왔습니다. 금식과 금육을 통해 아낀 돈은 나 자신이 아니라 꼭 이웃을 위해 베풀 것을 강조함으로써 공동체성을 확인해왔던 것입니다. 이로써, 기도와 자선과 단식은 한 범주로 묶일 수 있게 되었고, 지금도 매년 5월 14일은 기도와 단식과 자선 실천의 날로 지정되어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음식에서 발견되는 공동체성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환경의 차원에서 강조하고 계십니다(찬미받으소서 212항 참조). 개인의 기쁨을 위해 소비되는 육류 등이 공동의 집인 지구에 미치는 환경적 영향은 막대합니다. 동일한 영양소를 생산하기 위한 효율성의 측면에서 고기는 매우 뒤떨어집니다. 토마토 1kg을 만들기 위해서는 214리터의 물이 필요한 반면, 도축 이후 가공하는 과정 등을 포함하여 소고기 1kg을 만드는 데 필요한 물은 15,415리터라고 합니다. 이미 지구 담수의 70%는 농축산업에 사용되고 있지요(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iPET 창 81호 참조). 그리하여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을 맞아 지난 2020년에 주교회의에서 발표한 ‘특별 사목 교서 실천 지침’에서도 육류 중심의 식생활 습관을 개선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와. 서론이 정말 길었는데요. 금육과 금식을 개인적인 극기의 차원에서만 보면서, ‘두 발 달린 건 먹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차원보다 더 넓게 바라보자고 권고드리고 싶습니다. 정 두 발 달린 동물을 금요일에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참고하실 수 있도록 ‘한국 천주교회의 교회법 보완 규정’ 중 금식, 금육에 관련된 내용을 일부 전해 드립니다. ‘연중 금요일 재는 금육이나 금주, 금연, 선행, 자선, 희생, 가족기도로 지킬 수 있다.’는 조항이 그것입니다. 만약 금육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면 참고할 수 있겠고, 다른 방식으로 금육을 실천하신다고 하더라도 ‘재를 지킴으로 절약된 몫은 자선사업에 사용하도록 한다.’는 공동체적인 규정이 덧붙어 있음도 함께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