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남용우 마리아님 내방

펄펄 끓던 한여름의 기세가 조금씩 꺾이기 시작한 지난 8월 5일 목요일, 반포성당의 자랑스런 성미술품 중 하나인 스테인드글라스를 디자인하신 남용우 마리아 작가님께서 본당을 방문하셨습니다. 댁으로 가 작가님을 모셔오고 점심 식사를 대접하고 성당을 안내하는 등의 모든 과정은 고석준 아우구스티노 주임신부님께서 직접 맡으셨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이미 본당 누리집의 [하느님작품] 인터뷰(2021. 07. 12.)를 통해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얽힌 여러가지 말씀을 하시기는 했으나 반포성당을 몸소 방문한 것은 거의 40년만이라고 하십니다. 얼마전 다리를 다쳐 지팡이를 사용하시긴 해도 만 90세(1931년 출생) 연세가 무색하게 매우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이셨습니다. 다치기 전까지는 손수 운전도 하며 여전한 활동을 하셨다니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성당 마당에 막 도착하신 남용우 마리아 작가님
주임신부님께서 작가님을 모시고 성전으로 이동하고 계시는 모습
1979년 스테인드글라스 설치 당시 잘못 배열되는 바람에 원작의 아름다움을 다 전하지 못한 것이 늘 안타까웠던 작품 앞에서 본래의 바른 형태가 담긴 전시회 도록(1981. 09.) 표지와 함께 소중한 한 컷

성전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작가님은 [해와 달아, 주님을 찬미하여라]는 제목의 위 작품을 반갑게 어루만지셨습니다. 이 작품은 반포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얼굴이자 작가님의 대표작인데, 안타깝게도 작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그 배열이 잘못되어 1979년 이래 지금까지 바로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치 초기 작가님께서 이 사실을 알고 본당 담당자에게 수정을 요청하였으나 결국 반영되지 못한 채 무려 4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로 인해 작가님께서는 그동안 반포성당에 대해 매우 서운한 마음을 갖고 계셨다고 솔직히 말씀하셨습니다.

성전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빛의 중요성을 설명하시는 남마리아 작가님
성전 좌우 벽면에 일렬로 배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작품들에 대해 설명하시는 작가님

당신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시면서, 반포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1,866년에 설립돼 현재 1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데릭스 스튜디오(DERIX GLASSTUDIOS)에서 제작한 것으로서 장인들의 훌륭한 솜씨는 물론 케임(Came, 큰 유리 패널을 만들기 위해 작은 유리 조각 사이에 사용되는 분할 막대)의 품질이 뛰어나 500년이 흘러도 끄덕없을 것이라고 귀띔해 주셨습니다.

다만 작품 구상 당시 독일에 체류중이어서 성당 조감도에 의존해 디자인을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성전 1층 좌우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이 생각보다 낮게 달려 있어 좀 아쉬워하셨습니다. 지금처럼 바닥으로부터 그리 높지 않게 달리는 줄 알았더라면 상승의 기운을 나타낸 현재의 기하 문양보다는 이미지가 좀더 형상화된 다른 디자인을 선택했을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추상과 구상 문양의 환상적인 조화로 지난 40여 년간 반포성당의 미사를 아름답게 수놓아 주신 남용우 마리아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님
성전을 둘러보시는 내내 “참 아름답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며 기뻐하시는 작가님

존경받는 한국의 1세대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로서 성당과 개신교회 150여 곳에 탁월한 작품을 남기신 남용우 마리아님은 성당 건축 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이며, 아름다움을 좌우하는 최고의 요소가 ‘빛’임을 강조하셨습니다. 통상 작품을 구상할 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성전에 빛이 들어오는 기준 시간대를 오전 10~11시경으로 잡으며, 성전 전체 공간의 약 30%에 해당하는 자리에서 빛의 아름다움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도록 고려하신다고 합니다. 작가님 말씀대로 평일 오전 10시 미사와 주일 오전 11시 교중미사 시간에 성전이 그야말로 ‘빛의 환희’로 가득차 특히 더 황홀했던 이유를 이제야 정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성전을 나서기 전에 본당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기법과 소재의 우수성을 다시 강조하며 작품들의 영구보존 가능성과 그 가치를 설명하시는 작가님. 신부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작가님께서 꼭 읽어 보시라며 빌려 주신 관련 자료집
“많이 늦었지만 반포성당에 오기를 참 잘했다.” 신부님께서 마련하신 차편으로 댁에 돌아가시기 전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계시는 작가님과 신부님

인생의 희노애락 속에 주님 은총의 산실이자 참된 평화의 원천으로서 모든 신자들에게 늘 벅찬 감동의 대상인 우리 반포성당! 그 시작을 이토록 아름답게 꾸며 주신 남용우 마리아 작가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아울러 단순 실수이기는 하나 원작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도 바로잡기를 외면한 채 오랜 세월을 묻어온 반포성당의 게으르고 무딘 처사에 대해서도 정중히 용서를 구합니다.

성전 건립 이후 강산이 네 번 바뀌면서 성당 안팎의 환경도 많이 달라져 이제는 재건축을 더이상 미룰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성당문이 닫히고 열리기를 반복하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반포성당은 성전 재건축을 통해 더욱 창대해질 미래를 준비하며 지난 역사의 산물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남용우 마리아 작가님의 내방은 반포성당의 어제와 내일을 잇는 중요한 상징으로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500년, 1000년도 거뜬히 버틸 수 있는 본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케임(Came)과 영롱한 색유리들처럼 그리스도왕 반포성당은 천년을 하루같이 반짝이며 영원히 그 빛을 발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