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특집) 김대건•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th ③

<올해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이자 김대건 신부님이 유네스코 세계기념 인물로 선정된 의미 있는 해입니다. 희년을 지내는 동안, 하느님을 사랑하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같은 해에 태어난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모범을 본받아 두 분의 영성을 우리 삶에 깊이 새기고자 합니다.>

 

성실한 사제 최양업

 

거룩한 부르심을 받아 살아간 최양업의 삶은 14년간의 유학 생활과 11년 6개월간의 사목생활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첫 단어가 있다면 아마도 성실(誠實)일 것입니다. 중용(中庸)에는 “성(誠)은 하늘의 도(道)이고, 성실하려는 노력은 이는 사람의 도”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실한 자가 바로 성인(聖人)이요, 성실하고자 노력하는 이는 선(善)을 택하여 굳게 잡고 있다는 대목으로 이어집니다. “정성 성(誠)”은 말씀(言)이 사람이 되시어(成) 우리 가운데 성실하게(誠) 사셨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최양업 신부님은 14년간을 성실하게 복음의 가르침을 머금고(言) 이 땅에 돌아오셔서 몸소 성실한 사목을 이루어갔다고(成)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11년 6개월 동안 선한 업적(良業)을 쌓아가며 정성스럽게(誠) 양들을 돌보시다가 선종하셨습니다.

 

1850년 고국에 돌아온 최양업 신부님은 첫해 6개월 동안 3,815명의 교우들을 찾아가 만났습니다. 산길 교우촌을 초행길로 다니셨을테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요? 그다음 해에는 5,936명을 방문하셨다는데, 그 수는 전체 조선신자 수의 반이 넘습니다. 때로는 3~4명의 신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틀, 사흘을 걸어가 성사를 주고 오시기도 했습니다. 당시 영세자의 과반수는 최양업 신부님 관할 지역에서 나왔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신부님은 해마다 9~10월경에 스승 신부님께 편지를 보내어 그해에 있었던 사목활동과 신자들과의 체험을 보고했습니다. 이를 통해 박해를 피해 산속 교우촌에서 가난에 찌들어 사는 신자들, 양반제도라는 신분제 사회에서 핍박을 받고 있던 천주교 신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돌아온 신입교우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계십니다. 그분의 성실함은 사목 방문을 마치고 잠시 쉬는 여름에도 계속됩니다. 쉬는 시간 동안 다블뤼 주교님께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여 드리고, 기도서와 교리서의 한글 번역을 도와드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서적이 기도서인 「천주성교공과」와 교리서인 「성교요리문답」입니다.

 

그래서 최양업 신부님이 갑자기 선종했을 때, 선교사들은 모두 다블뤼 주교님의 오른팔이 사라졌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은 또한 조선 신학생들을 선발해서 페낭신학교 스승 신부님들께 보내면서 그들에게 겸손과 회개를 가르쳐주시도록 청하였습니다. 또한 한글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 ‘천주가사’를 지어 구전으로 교리를 배울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습니다.

 

그렇게 지상에서 성실한 사목생활을 마무리한 최양업신부님은 당신이 지으신 ‘사향가’의 가사처럼 천국 본향을 향해 떠나셨습니다.

 

어화 벗님네야,
우리본향 찾아가세.
동서남북 사해팔방 어느곳이 본향인고 …
인간영복 다얻어도 죽어지면 헛것이오.
세상고난 다받아도 죽어지면 없으리라 …
아마도 우리락토
천당밖에 다시없네.”

 

조한건 프란치스코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출처: [특집] 김대건•최양업 신부님 탄생 200th (2021.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