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성당 성미술품 ④] 성모자상 – 김세중 프란치스코 교수

성당 마당의 성모자상
성당 마당의 성모자상
성당 마당의 성모자상
성당 마당의 성모자상
성당 마당의 성모자상

 

* 김세중 교수는 경기도 안성 출신으로 1950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을 1기생으로 졸업하였으며, 1952년에 동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였다.

1952년부터 서울대학교 조소과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술대학 학장을 역임하였고,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국제조형예술협회 한국위원회 위원장, 가톨릭미술가협회 회장,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등 미술행정면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그의 작품에서 주요골격을 차지하는 분야는 종교작품으로,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의 기념비상 제작시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간을 종교적인 주제의 작품 제작으로 일관하였다.

평판적으로 단순화된 형태에 극도의 긴장감과 엄숙함이 표출되는 그의 작품세계는 중세의 조각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특징은 종교작품이 아닌 순수조각이나 기념비조각상에도 나타나서 「토르소」나 「유엔탑(UN塔)」과 같은 작품에서도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작으로 「자매순교자」·「십자가」·「최후의 심판도」 등이 있고, 기념비조각으로는 광화문의 「충무공이순신장군상」, 국회의사당 앞의 「애국상」 등이 있다.

[출처: (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김세중(金世中) / (사진) 반포성당]

 

* 김세중 조각의 결정체는 무엇보다 종교 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그리스도교 미술은 한국교회가 창설되고 여러 시각 형상이 제작되면서 시작했다.

초기엔 박해를 받았던 그리스도교 미술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890년대 여러 성당 건축이 들어선 이후부터였다.

장발 화백은 여러 의미에서 교회 미술의 선구자였고, 그가 학장으로 있던 서울대 미대는 김세중뿐 아니라 윤승욱, 김종영, 이순석 등의 교수들이 모두 가톨릭신자였으므로, 당시 서울대는 종교미술의 중심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세중 선생의 종교 조각에 대한 열정은 그가 초기부터 여러 종교 작품을 제작한 점에서도 나타난다.

1954년 그가 26세 나이에 제작한 한복 입은 ‘골룸바와 아그네스’는 성인 자매이다.

이 작품은 1954년 열린 ‘성미술전’에 출품됐고 1983년에 다시 한 번 ‘두 여인’이란 이름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의 종교 조각을 보면, 당시 그를 사로잡은 것은 중세 유럽의 교회 조각이었다고 생각된다.

서울 혜화동성당 조각의 하나인 ‘순교자상’은 신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정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려 했던 중세 조각과 유사하다.

또 혜화동성당 ‘최후의 심판도’에 종교적 도상을 정확하게 사용한 사실을 통해 그가 서양 종교 미술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세중 선생이 가장 많이 남긴 종교적 주제의 하나가 ‘성모자상’이다.

1980년 위 수술을 한 후 그는 조형물보다는 종교적 주제에 더 매달렸다.

특히 이상주의와 사실주의가 아름답게 융합한 르네상스 종교 미술보다는 오히려 약간 경직되고 단순하면서도 엄숙한 중세 종교 이미지에 바탕을 두면서, 우리나라 초창기 그리스도교 미술 양식과 도상을 성립시키고 그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세중 선생은 약 1000점의 작품을 제작했다고 회고한 바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 우뚝 서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이다.

또 ‘유관순 동상’, ‘유엔 참전 기념탑’ 등 상당수의 동상과 조형물을 제작해 공공 조각 부문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대한민국 아이콘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충무공 이순신 장군상’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주요 조각이 서양 조각의 여러 모티브에 의존한 경우가 많았던 것에 비해, 좀 더 한국적 전통에서 아이디어를 찾았다는 점이다.

서양의 경우 장군의 동상은 주로 기마상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이순신 장군의 우뚝 선 자세는 오히려 조선 시대 능묘의 무관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출처: (글) 가톨릭신문, 2016년 6월 19일 제2999호; 동 신문, 2016년 6월 26일 제3000호 / (사진) 반포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