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한 대역죄인이지만 하느님의 사랑받는 한 사람”

나희균 크리스티나(17구역 6반) 화백 인터뷰

 

2020년 12월 8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에서 나희균 크리스티나(17구역 6반) 어르신과의 인터뷰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작가님의 화업 70년 특별전(고요의 빛)이 열리고 있는 환기미술관에서 어르신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미리 답해주신 인터뷰 질문지에 대한 글을 토대로, 어르신의 삶과 신앙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나희균, 고요의 빛

나는 자연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자주 산에 오르고 스케치도 해본다.

물, 나무와 바위, 풀잎 등 신기하지 않은 것이라곤 없다.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자신도 그것에 동화되도록

노력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그런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또한 이 시대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작가가 되고 싶다.

-1998, 나희균-

 

▶ 어르신의 천주교 신앙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셨나요?

 

1955년부터 1958년까지 파리에 머물면서 A.F.I.(국제여성협력회, 평복 입은 수녀회) 기숙사에서 지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림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삶에 대한 기준이랄까, 왜 살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A.F.I. 수녀님들은 늘 명랑하고 기숙생들을 진심으로 돌보시는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고, 그분들이 믿는 종교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습니다. 한 분의 수녀님에게서 짧게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수녀님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셨는데, 그 당시에는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1958년 부활 미사 때 영세를 받고 돌아와서는, 곧 결혼을 하게 되고 환경이 바뀌고 깊은 교리 지식도 신앙도 부족하여 한 2년 정도 냉담 상태로 지냈습니다. 어느 날, 책장에 <기도 입문>이란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 책을 차근차근 읽고는 이런 정신세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 그때부터 책을 읽으면서 차차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존경하는 성직자, 수도자들도 만나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반포성당 공동체 혹은 다른 단체에서 어떤 봉사를 맡아서 해 주셨나요?

 

반포성당에는 10년 넘게 다니면서 부끄럽게도 봉사 활동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성전에서 봉사하시는 분들께 감사할 뿐입니다. 그리고 가장 궂은 일을 맡고 계신 반장, 구역장님께 존경을 드립니다. 아들 부부가 전례부에서 봉사하고 있어 다행으로 여깁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삶의 기초가 되는 서로간의 돌봄과 사랑, 원수에까지 이르는 사랑. 쉬운 것 같으면서도 제일 어려운 사랑의 실천을 어르신께 여쭙고 싶습니다.

 

▷ 어떻게 이웃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오셨는지 편하게 알려주시면, 저희도 어르신께 배워서 이웃 사랑을 더 진하게 나누겠습니다.

 

저는 작은 사립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어서 직원, 관리인이 5명입니다. 저는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인복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분들이 말썽을 부리는 일이 전혀 없습니 다. 그래서 저도 저의 한도 내에서 후하게 대접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40에는 교도소가 아현동에 있어, 사형수 두 사람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러 다녔습니다. 한 사람은 참으로 억울하게 사형 선고를 받았고, 한 사람은 각막을 기증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편지로 많은 얘기를 나눴고, 法이 바르게 심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반듯이 이루어야 할 일임을 절감했습니다.

 

▷ 살다 보면 억울한 일도 있는데요, 건강하고 아름답게 용서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억울한 일을 당한 적은 없지만, 좀 마음 상한 일이 있어도 맞서지 않고 내버려두면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어르신께 미사의 의미는 어떤 것이며, 미사를 자주 드릴 수 있는 비결이 있을까요?

 

사실 늦도록 미사의 참뜻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는 소책자를 읽고, 미사가 2000년 동안 지구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미사 때마다 생각됩니다. 아침 5시면 모든 수도회와 본당에서 미사를 준비하고 기도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요새는 주로 T.V. 미사를 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현재 하느님 안에서, 기도의 삶에서 누리시는 어르신의 내적 자유와 풍요로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그저 저는 가끔 이순이 루갈다가 자신을 ‘대역죄인’이라고 한 대목이 생각나, ‘나는 더한 대역죄인이지만 하느님의 사랑받는 한 사람’임을 나날이 느끼고 있습니다.

 

어르신은 영혼에 여유를 주기 위해서(영혼을 순수하고 맑게 하기 위해서) 어떤 생각과 활동을 해 오셨는지요.

 

저는 그림 그리는 것이 저의 일이므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시간을 그리는 일에 쓰고 있는데, 그림은 그 사람을 그대로 나타내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자주 실망합니다. 그림에 나타난 조급함, 옹색함, 통일성이 없음 등이 늘 따라다닙니다. 그것들을 조금씩이라도 고쳐 나가려고 노력합니다.

전체의 통일된 구도, 맑은 색, 조화.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매일 고쳐 나가는 것이 저의 일이고 이렇게 끊임없이 계속하다 보면 어느 날 붓을 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치는 것도 안 좋고, 꾸미려고 하는 것이 제일 안 좋습니다. 「그림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탄생하는 것이다.」라는 名言도 있습니다.

 

어르신의 신앙생활과 작품 활동과의 관련성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사실 믿음을 작품으로 표현한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作品에는 作家의 삶이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참으로 미흡하고 가톨릭미술가회에 몸 담고 있으나, 저의 마음이 움직일 때 한 두점의 작품을 시도했습니다.

네온(neon)으로 만든 ‘성체등’과 철의 작품으로 ‘무명순교자를 위함’이 있고, 1999년 배론성지의 대성당 내에 ‘최양업 신부의 생애’에 대한 삼부작이 있습니다. 그 때, 대성당 내부 장식을 가톨릭미술가회에 맡겨졌습니다.

성체등                                                 

‘성체등’(1980년)은 빛이 보이면 희망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네온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성당 감실에 빨간 등이 켜져 있죠. 그래서 네온을 사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빨간색과 주황색으로 성체와 성작,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사람이 길을 잃으면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되죠. 그런데 어둠 속에서 켜진 네온의 환하고 밝은 불빛은 사람들을 희망의 길로 인도해 줄 수 있습니다.

무명 순교자들을 위하여

‘무명 순교자들을 위하여’(1988)는 건축자재, 파이프, 철판, 동선, 황선 등을 이용해 그림을 떠나서 보다 자유롭고 리드미컬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평신도에 의한 신앙의 전파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켜낸 우리나라 순교자들과 교회 역사, 그중에서도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순교자들이 보여준 깊은 신앙에 경의를 표하며 이를 작품으로 표현했습니다.

 

요즘 하느님께 가장 감사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어떤 점인지요.

 

이토록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허락하신 뜻이 예수살이를 좀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인 듯 싶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 작가님께서 반포성당 교우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을 편하게 해 주시면,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제가 어느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구절이 되새겨집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람됨과 만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이란 분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自問해 봅니다. 이것이 저의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나희균, 고요1, 2008

물가에 살면서

석양이 수면에 비추면서 만들어내는 빛 길이

그렇게 다양하고 황홀한지

요즈음에야 보게 되었다.

바람과 물결 따라

빛은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2012, 나희균-

 

나희균, 은하수3, 2014

밤하늘을 우러러보니 나의 미소함과 우주의 광대함에 숙연해집니다.

더구나 아름답게 빛나는 성운들과 미리내는 신비로움으로 가득합니다.

인간의 죄악을 뛰어넘는 저 하늘의 별무리들은 우리에게

언제나 회심할 것을 권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5, 나희균-

 

나희균, 회심, 2018

평소 반포성당 평일 미사, 주일 미사에 나오셔서 기도하시는 단아한 어르신의 모습을 뵙고, 하느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희균 크리스티나 어르신께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을 완수할 수 있는지 발견하도록 도움을 주시는, 진솔한 인터뷰를 흔쾌히 허락해 주심에,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미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말씀으로 존재하십니다. 어르신 안에 머무르시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통해, 저희는 현재에 더욱 충실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희에게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어 주셔서 진심으로 존경과 사랑과 감사드립니다.

 

미술관에서 어르신의 삶을 마주한 후, 뒤뜰에서 손수 준비하셔서 따라주시던 따뜻한 차 한잔과 달콤한 초콜렛 맛은, 겨우내 하느님 사랑으로 기억되고, 그 기억은 따뜻함으로 내내 남을 것입니다. 다음 세대의 삶을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신앙의 지혜를 나누어 주시고, 하느님의 겸손과 사랑을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어르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반포성당 교우들이 크리스티나 작가님께서 주신 귀한 말씀을 통해서, 저 뒤로 밀쳐놓은 신앙의 삶을 다시 소환해서 하느님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돌보며 사랑을 이어가겠습니다.

미술관 뒤뜰에서 나희균 크리스티나 어르신과 함께

인터뷰 진행 및 글: 한지은 데레사(사목협의회 어르신분과장)